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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실크로드, 사막을 가르다 (5/6, 설산 속의 호수, 카라쿠리)

여행지 : 카라쿠리 호수
여행일 : 2011/07/23, 24, 25




중국의 서쪽 끝, 카스에 도착하자 역 앞에서 대기 중인 거대한 택시 물결이 보인다. 그만큼 사람들의 왕래가 잦다는 증거가 아닐까. 더군다나 ‘푸른 눈’의 위구르 인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내륙의 중국과는 많은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서쪽으로 이동해온 이번 실크로드 여행에서 가장 위구르적인 곳이 아닐까 싶다.

호텔에 짐을 풀고 점심도 해결할 겸 바자르(시장)로 이동했다. 한국으로 치면 남대문시장(서울)이나 국제시장(부산) 쯤 되는 곳으로 토피(이슬람 남성들이 쓰는 둥근 모자)와 히잡(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에 두르는 수건)을 두른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흥정소리나 길모퉁이에서 주스나 하미과를 먹는 모습 등 진열된 몇몇 특산품을 제외하고는 우리네 시장과 다르지 않았다. 형형색색의 토피나 스카프, 옷이나 장신구에서부터 주머니칼과 같은 기념품, 낭(신장위구르 지역의 빵)이나 닭고기, 양고기, 과일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우리는 기념이 될 만한 물건이 없을까 시장을 둘러보다 한 음식점에 들어갔다. 이슬람식의 요리를 파는 대형 식당이었는데 주변을 곁눈질하며 닭고기, 양만두, 그리고 버섯튀김을 주문했다. 그런데 닭고기나 버섯 요리는 먹을 만했는데 양고기로 속을 채운 만두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열흘정도 실크로드를 여행하면서 많은 양요리를 먹어봤지만 이번처럼 비릿함이 강한 양은 처음이었다. 간장의 맵싸한 향이 더해지면 괜찮을까 싶어 찍어 먹어봤지만 식도를 비집고 올라오는 느끼함은 여전했다. 미묘한 눈치싸움에도 절반이나 남은 만두! 그렇다고 시켜놓은 음식을 남길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할당량을 나눈 후에야 겨우 만두 접시를 비울 수 있었다.


 
한 시간 정도 바자르를 둘러본 뒤에 각종 과일과 시원한 맥주와 생수를 한아름을 사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이곳은 상온에서 먹는 음료문화 탓에 호텔이라도 냉장고가 없다. 다행히 음료는 시원한 것을 구할 수 있었지만 과일은 3, 40도의 더위 속에서 팔던 것인지라 호텔 욕조에 과일을 담가놓고 하나씩 꺼내 먹었다.

여행의 피로가 누적되고 음식이 달라서일까, 아니면 더운 날씨에 차가운 물을 많이 먹어서 그럴까. 점점 변이 묽어지기 시작하더니 설사를 하는 횟수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부글거리는 속을 진경시키며 포근한 시트 속에서 단잠에 빠져든다.




다음날(24일) 아침, 파미르고원에 위치한 해발 3,700m의 카라쿠리 호수에 가기위해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카라쿠리 호수는 카스에서 남쪽으로 200Km 정도 떨어져 있는 호수로 타스쿠얼간 행 버스를 타고 가다 중간에서 내려야한다. 하지만 정작 터미널에서는 타스쿠얼간으로 가는 버스가 없다는 것이다. 어제 분명히 확인했는데 버스가 없다니…

30여분을 수소문하고 기다린 끝에 다시 매표소에 물어보니 이번에는 표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신장을 여행하던 중국인에게 물어보니 버스가 있더라도 일단은 없다고 해놓고 몇 번을 재촉하면 그때서야 버스표를 내어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마도 터미널 밖의 사설 운송업자들과 모종의 거래가 있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을 하며 ‘찝찝한 버스’에 올랐다.

남서쪽으로 방향을 튼 버스는 중국의 국경지대로 향한다. 광활한 사막지대를 두 시간 정도를 달리니 야트막한 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곧이어 크고 작은 산들이 융기와 침식을 반복하는가 싶더니 저기 멀리서 허연 이빨을 드러낸 뾰족한 설산이 보인다. 경사를 높이고 있는 버스는 벌써 파미르 고원의 초입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휴게소에 들르는가 싶더니 모든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린다. 알고 보니 이곳은 일종의 국경초소로 저 앞에는 전투복에 소총까지 둘러 맨 군인이 검문을 하고 있었다. 기사나 승객은 차에서 내려 신분 확인을 받은 후에야 통과할 수 있었다.

여행 후에 검색해보니 이곳은 소련에서 독립한 ‘타지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역으로 중국과 영토분쟁 중인 곳이었다. 더구나 신장위구르지역의 독립 움직임 때문인지 상당히 예민한 지역이라고 했다. (실제로 우리가 카스에서 돌아온 일주일 후에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테러가 일어났다.)

위구르족과 같은 소수민족에게는 독립이 당대에 풀어야 할 지상최대의 염원일 테지만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동화시키고 관리해야 할 대상이니 그 시각 차이는 일제 강점기의 한국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마음으로는 위구르족을 응원하고 싶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그들의 노력이 힘겨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국경초소를 지나자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든다. 수백 미터는 족히 됨직한 절벽사이를 느리게 올라간다. 서서히 경사도 높여가는 트레드밀처럼 만만치가 않다. 곳곳에 설치된 급커브, 낙석주의 표지판들이 이곳의 지형을 대변해준다. 오래된 버스가 에어컨까지 끄고 사력을 다해보지만 힘이 붙이긴 마찬가지다. 가래가 끓어오르는 듯한 엔진소리가 우리를 긴장하게 했다. 귀가 먹먹해지고 뚫리기를 몇 번, 버스는 부지런히 오르고, 또 올랐다.

절벽 사이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흘러내린 토사는 섬세하면서 위압적이었고, 고봉 사이를 흘러내린 빙하는 조용하면서 거대했다. 계곡을 채운 황톳물은 맹렬하면서 우렁찼다. 우리의 시간으로는 가름하기 힘든 자연의 움직임 앞에 인간은 세삼 초라해졌다.




초소를 지나 2시간을 더 달렸을까, 도로 왼편으로 카라쿠리 호수가 보였다. 시원하게 펼쳐진 비취색 호수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하얀 설산, 검푸른 하늘은 이곳이 파미르고원에 위치한 해발 3,700m의 천상호수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듯 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숙소를 알선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삐끼(?)들이 일행을 잡아끈다. 우리는 인상 좋아 뵈는 사람을 골라 못이기는 척 따라나섰다. 기다리고 있던 한 무리의 오토바이에 올라탄 우리는 잠깐 사이에 몇 체의 파오가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파오는 원기둥 모양의 둥근 홀에 고깔을 씌워놓은 듯한 모양으로 이곳 유목민들의 전통가옥을 흉내 내어 만든 시멘트 건물이었다. 우리는 주인아저씨와 흥정을 통해 파오와 양(800元) 한 마리를 부탁해 놓고는 말(50元)을 타고 호수를 둘러봤다.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볕과 잔잔한 호수, 그 주변으로 하얀 이마를 드러낸 설산들을 보자니 부드럽게 채색된 풍경화에 들어온 것처럼 편안했다. 터벅거리며 걷는 말의 걸음걸이는 음악실의 메트로놈(음악에서 템포를 나타내는 기계)처럼 리드미컬했고 아기를 잠들게 하는 엄마의 심장박동처럼 포근했다. 깊게 들이마신 공기 속에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충만함이 가득했다.

호수를 사이에 놓고 왼쪽으로는 공걸봉(7,719m)이, 오른쪽으로는 무스타커봉(7,546m)이 모습을 드러낸다. 7,000m에서 흘러내린 만년설은 산허리를 돌아 긴 혀를 내밀었고 아이스폴의 갈라진 틈에서는 몇 해를 묵혔을지 모를 빙수가 호수로 녹아들었다.









산책을 마치고 파오로 돌아오니 막 잡은 양을 손질하고 있다. 바닥에 흘러내린 시뻘건 핏물이 섬뜩하기도 했지만 이때가 아니면 언제 볼까 싶어 유심히 관찰했다. 파미르 고원에서 펼쳐지는 해부학 수업이랄까…

절명시킨 양을 바닥에 눕혀놓고 배에서부터 가죽을 벗겨나가자 허연 몸체가 드러났다. 배를 갈라 내장을 들어내고 갈비뼈를 열게 심장과 폐를 추려냈다. 뼈와 살을 발라 적당한 크기로 고기를 다듬었다. 조금은 잔인할 수도 있지만 여섯 명의 대식구가 먹자니 어쩌겠는가. 즐겁게 먹어주는 것도 일종의 보시라 생각하는 수밖에…

20여분만 두개의 솥에 나눠 담겨진 양은 생각보다는 많지 않았다. 처음에는 동네잔치라도 벌일 만큼의 양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손질하고 보니 오늘 한 끼 먹을 분량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양고기를 솥에 넣고 삶으며 간간히 기름을 걷어내는 작업을 반복하길 한 시간 정도, 드디어 양고기를 입에 넣었다.

“으~ 이게 바로 오리지널 양러(양고기의 현지 발음)로군.” 노릇노릇, 쫄깃쫄깃, 양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생각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가져온 소금과 고추장을 곁들여가며 허기진 배를 채웠다. 부드러운 육질에 적당히 가미된 기름이 돼지수육을 먹을 때와 비슷했다. 물론 양 특유의 냄새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카라쿠리 호수라는 분위기에 취해서인지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특히 간이 맛있었다. 한국에서 순대와 같이 먹어보던 간에 비해 훨씬 더 존득하고 향도 띄어났다. 술이 돌고 잔이 돌고, 고기도 돌고 이야기도 돌았다. 알싸한 노주의 향이 파오 전체를 가득 매웠다.




우리는 든든하게 저녁을 먹은 후 이불 속에서 금세 곯아떨어졌다. 하지만 분위기에 취해 양과 술을 폭식한 탓인지 새벽녘에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속은 부글거리고 머리는 띵~. 화장실이 변변찮아 참으려고 했지만 한번 뒤틀려버린 속은 쉬 진정되지 않았다. 다른 일행도 마찬가지였는지 손전등을 찾아 밖을 들락날락하는 소리로 부스럭거렸다. 결국 나 또한 불편한 속을 부여잡고 파오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어디서 일을 본담? 저기 언덕 뒤로 가면 되겠군.” 적막한 허허벌판을 헤치며 야트막한 언덕 뒤에 자리를 잡았다. 바지를 내리고 잔뜩 힘이 들어간 엉덩이에서 힘을 빼자, 뿌지직! 양기름으로 번들번들해진 설사가 파미르 고원의 고요함을 깨운다.

파오로 들어가려다 문득 고개를 들자 하늘에선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눈에 익은 별자리 말고도 수많은 별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류시화 님은 저 별을 그리움을 걸었던 흔적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공해에 가려졌던 수많은 그리움이 한순간에 덮쳐왔다. 별이 달려드는 모습은 윈도우즈의 화면보호기, ‘우주 공간’을 보는 듯 현란했다.



급한 불은 껐다지만 잠은 쉬 오질 않았다. 이렇게 뒤척일 바에는 산책이라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다시 파오를 나섰다. 붉은 기운이 동쪽 하늘에 선명해진 새벽녘이었지만 공걸봉 뒤로 아직 일출은 시작되지 않았다. 뒤숭숭한 속도 달랠 겸 어제 버스에서 내릴 때 봤던 카라쿠리 호수 입구까지 갔다 오기로 했다.

그런데 무스타커 봉을 바라보며 기분 좋게 걷고 있는데 등 뒤로 셰퍼드 한 마리가 짖으며 쫓아오는 게 아니던가. 100여 미터를 두고 계속 쫓아오는 폼이 보통 독종이 아닌 듯 보였다. 주변에는 사람도, 인가도 없는데다 핸드폰도 가지고 오지 않은 상태라 어디 도움을 청할 때도 없었다. “으~, 죽었다. 멀리 이국땅에서 셰퍼드한테 물어 뜯기게 생겼구나~”

마침 호수를 끼고 돌아가는 산책로가 보여 우선은 그쪽을 통해 되돌아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개새끼'의 추격은 더이상 없어 보였다. "휴~"

오히려 이번 사건이 전화위복이 되었는지 숙소 근처에서 보던 카라쿠리의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었다. 밝아오는 아침 햇살과 잔잔한 호수, 새벽녘에 걸어보는 나무 산책로와 호수에 비친 무스타커 봉의 모습이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마치 윈도우 배경화면에 들어와 버린 것 같았다. 연신 셔터를 눌러가며 아침의 고요함을 즐겼다.




한 시간여의 파란만장한 산책을 마치고 무사히 파오에 도착하니 일행들이 모두 일어나 카스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8시 30분, 짐을 꾸리고 나오자 설산 사이로 막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했다. 구름이 많아 붉은 일출은 볼 수 없었지만 구름 사이를 헤집고 나오는 빛줄기는 장엄함 그 자체였다. 신의 얼굴 뒤에 비치는 인광처럼 산봉우리와 구름에 걸쳐진 빛줄기가 방사형으로 뻗어 나왔다.

그런데 카스로 오는 돌아오는 차편이 마땅치 않았다. 버스는 시간을 기약할 수 없었고 오기로 했던 택시는 두 시간이 지나도 무소식이었다. 결국 카스로 가는 트럭을 세우고 흥정을 해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카스, 온 삭신이 다 쑤신다. 누적된 피로도 한몫 했지만 무엇보다 여행의 후반부로 갈수록 부쩍 잦아진 설사가 힘을 많이 뺐어간 것 같다.

우리는 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청진사(20元)라는 이슬람 사원을 둘러봤다. 카스에서 제일 규모가 크다는 곳인데 이슬람 문화에 문외한인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공간이었다. 기독교, 불교와 더불어 세계 3대 종교라는 이슬람교였지만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잘 보이지도 않았다. 어디선가 이슬람교가 기독교와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많다고 들었던 것 같다. 언제고 알라신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다.

우리는 바자르를 한 번 더 둘러본 후 호텔 식당에서 거나한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그 좋던 술도 이제는 입에 쓰기 시작했다. 여행이 피곤하긴 했나보다. 내가 술을 마다하다니…

내일(26일)은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우루무치로 가야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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