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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성과 죽음에 대한 솔직한 담론 - 변강쇠가


강마을의 여름은 빨강입니다. 여름과 같은 성정으로 남쪽을 주관하는 신은 주작(朱雀), 붉은 봉황입니다. 그녀의 화르르 타오르는 열기는 여름의 절정과 참 잘 어울립니다. 붉은 불덩이를 삼킨 듯 온몸을 태우는 그녀, 옹녀가 등장하는 『변강쇠가』를 읽었습니다. 노골적이고 강렬하며 민망하지만 자연스러운 모습이 우리의 여름과 닮아있습니다. 『변강쇠가』는 예전 우리의 장터마당에서 ‘19금’의 은밀한 이야기들이 판소리로 공연되어 남녀가 공감하고 즐겼다고 합니다. 남몰래 훔쳐보는 것이 아니라 성과 죽음의 문제를 드러내어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 “샤아아 샤샤 싸아아아---- 싸” 하고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읽는 『변강쇠가』에는 성(性), 질병, 죽음, 시체, 무속행위 등 우리들이 터부시하는 것들이 마구 뒤섞이면서 흥미진진하게 전개됩니다. 우리는 『변강쇠가』에 대해 무지합니다. 한국인치고 변강쇠와 옹녀를 모르는 사람은 없고, 수많은 영화를 통해 변강쇠와 옹녀가 명실상부한 성적 아이콘으로만 자리 잡았습니다. 특정한 배우의 뜨거운 숨소리만을 기억한다는 것은 몹시 부끄러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변강쇠와 옹녀가 판소리 『변강쇠가』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판소리의 주인공인 만큼, 변강쇠와 옹녀뿐 아니라 『변강쇠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외설적 영화에서 나오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입담의 천재들입니다. 그들은 쫓겨나거나 병이 들거나 죽거나 하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가슴속 응어리로 간직하는 대신 가볍고 경쾌하게, 아주 재미있게 전달합니다. 이 글을 풀어 읽은 이는 무엇보다 『변강쇠가』에서 이런 능력을 배우고 싶었으며, 치부건 상처건 입 밖으로 표현하고 해학과 유머로 치유하는 지혜가 담겨 있는 텍스트로서 『변강쇠가』를 소개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옹녀는 결혼하는 남자마다 죽게 되는 청상과부살의 운명을 타고났으며, 옹녀가 만남 남자들은 첫날밤에 죽고, 매독으로 죽고, 벼락 맞아 죽고, 남의 집 담 넘다가 맞아죽고.... 급기야 옹녀의 상부살로 인해 남정네들이 모두 죽자 마을여인들은 집을 허물고 옹녀를 추방한다. 유랑민이 된 옹녀는 청석관 길 위에서 남주인공 변강쇠를 만난다. 천하의 정력가 변강쇠와 옹녀는 서로 마주친 즉시 부부의 연을 맺는다. 하층민인 그들에게 믿는 것은 몸뚱이 하나뿐인 것이며, 그들의 생존의지가 ‘성’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변강쇠와 옹녀는 정착을 위해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구고 생계를 마련한다. 게르고 무능한 천하 잡놈 변강쇠에게 나무해오라는 옹녀의 말에 장승을 땔감으로 통째로 뽑아온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장승을 뽑은 강쇠는 장승의 동티로 온몸 구석구석 병이 나서 죽는다. 죽은 변강쇠는 옹녀에게 수절과 봉제사를 요구하고 옹녀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을 즉사하게 만든다. 힘들게 변강쇠의 송장을 치우고 옹녀는 사라진다.

옹녀가 혈혈단신 삼남으로 오는구나. 평안도 땅 중화 지나, 화해도 땅 황주 지나, 동선령 고개 넘어 봉산 · 서흥 · 평산을 지나 금천의 떡전거리 달기우물 옆을 지나, 개성 근처 청서고간에 도착했네.

이때에 변강쇠가 저 멀리서 오는구나. 천하의 잡놈으로 삼남에서 빌어먹다 양서로 가는 중에 청석골 좁은 길에서 옹녀와 마주쳤다. 간악한 옹녀 년이 힐끗 보고 지나가니 의뭉한 강쇠 놈이 다정히 말을 건다.

“여보시오, 저 마누라 어디로 가시나요?”
“삼남으로 가오,”
강쇠가 계속 물어
“혼자 가시오?”
“혼자 가오.”
“고운 얼굴 젊은 나이 혼자 가기 무섭겠소”옹녀가 들으란 듯이 애련히 말하기를
“내 팔자가 무상하여 서방 죽고 자식 없어 함께 갈 길 동무는 그림자뿐이지요.”
“어허, 불쌍하오! 당신은 과부시오? 나는 홀아비니 둘이 살면 어떠하오?”

지난 해 SNS를 통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퍼졌던 일반인이 주인공이었던 동영상을 아실 것입니다. 평범한 얼굴의 일반인의 얼굴이 노출되어 그대로 경악하게 만들었으며, 수많은 유언비어를 양상시켰습니다. 성이 이제는 상품화되고 구경거리로 전락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변강쇠가』를 읽으며 성과 죽음 문제가 삶에서 매우 중요한 만큼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어야 합니다. 삶의 다른 이름인 죽음은 다른 삶의 연장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건강한 성은 아름다운 모습이고 구경거리가 아닌 생활의 다른 모습임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말복이 지났습니다. 저녁이면 ‘지르릉 지르릉’ 벌레 소리가 울립니다. 이글이글 타는 눈동자의 여름은 그 끝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달라지겠지요. 바람과 구름과 나무와 우리의 마음에 빈자리가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뜨거운 여름 여인 옹녀의 모습을 그리워하겠지요. 여름살이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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