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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사는 학교를 춤추게 한다

오랜 시간 치열한 노력 끝에 장학사가 됐지만 폭주하는 공문에 시달리면서 회의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행정보다 학교를, 교육을 지원하는 일을 꿈꿔 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래도 학교를 신명 나게 하고 싶다. 내 조그만 노력이 밑거름이 되어…….

‘따르릉, 따르릉’
자리에 앉자마자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
"감사합니다, 00교육지원과 장학사 000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수화기를 들고 첫인사를 하기가 무섭게 시작되는 민원인의 흥분된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사무실 전체에 전달된다. 특수학급에 다니는 학생의 학부모인데 집에서 가까운 특수학교로의 전학을 원하는 민원이다. 장애를 가진 학생들의 숫자에 비해 이들을 교육할 학교나 학급이 부족하여 생기는 일이다. 민원인의 요구를 충분히 들은 후 특수학교 학생배치 방법에 대해 안내하고 담당자 연락처를 남기는 것으로 전화를 마무리하며 시계를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특수교육 관련 업무는 교사 때도 해보지 않았던 업무다. 장학사가 되어서야 접하게 된 업무 중 하나이다.

서둘러 업무관리시스템을 열고 담당배정이 된 공문을 확인하니 영락없이 수북이 쌓여 있다. 당장 학교에 보내 자료를 받아야 할 공문과 급하지는 않으나 중요한 공문,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공문 등으로 분류한 후 일을 시작한다. 본청에서 지역청을 거쳐 학교에 내려 보내는 공문은 다시 가공을 해야 한다. 본청에서는 해당 지역청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반적인 내용을 담아서 내려 보내므로 지역청 특성에 맞게 다시 일부 수정을 해야 한다. 학교에서 이해하기 쉽도록 수십 번 수정한 후 공문을 보낸다. 그렇게 보내도 학교에서 들어오는 내용은 제각각이다. 수합된 자료를 다시 정제하여 정리한 후 본청으로 보낸다. 여기서 끝나면 다행이지만 중간에 본청에서 급하게 수정 공문을 내려 보내면 지역청에서는 대략 난감이다. 학교에 이미 공문을 뿌려서 수합하는 중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더욱 난처하다. 그래도 상황을 수습하고 일을 처리한다.

초임 장학사인 경우 학교에 보내는 공문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일이 다반사다. 공문의 내용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표현한다고 해도 그 내용을 받는 입장에서는 달리 해석될 수 있다. 학교에 공문을 보내고 전화가 몇 통화가 오느냐에 따라 ‘잘 된 공문’ ‘잘 못된 공문’으로 분류한다. 그것이 곧 장학사의 역량으로 평가된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가독성, 이해도를 고려하여 공문을 다듬지만 워낙 많은 공문을 처리하다보면 미처 내용을 훑어보지도 못하고 내려 보내는 일이 다반사다. 본청 각 과의 장학사나 주무관들이 보내는 공문이 하루에도 수십 건이다. 본청 해당 부서에는 5~6개를 보낸다고 하지만 그것이 20개 과에서 보낸다면 하루에 쏟아지는 공문의 수는 이내 100개를 넘게 된다. 물론 그 공문이 모두 한 사람의 업무는 아니지만 현재의 업무 구조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장학사로 발령을 받아 임지에 부임한 순간부터 장학사는 주어진 업무의 전문가여야 한다. 민원인들은 교육청의 장학사가 신규인지 경력자인지 알지 못한다. 모든 업무를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전화를 하는 것이다. 어제는 교사로 학급을 운영하고 학교의 작은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었지만, 장학사가 된 순간부터 교육청 모든 정책을 가장 최일선에서 수행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리고 그 임무에 대해 정통해야 한다. 특히, 당해 연도의 교육정책 중 가장 핫한 이슈가 되는 업무를 맡게 되면 각종 민원 및 언론의 요구자료, 시의회, 국회 요구자료 작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된다.

처음 장학사가 되었을 때 그 많은 공문을 처리하면서 장학사가 아니라 단순 행정업무를 하는 행정직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학교예산이라고는 10만 원도 써 보지 않았던 교사로 살다가 관내 학교에 사업별로 수천만 원 씩 교부하는 일을 하고, 그 결과를 다시 수합하는 일을 하면서 이것이 장학사의 업무인가 하는 고민을 수십 번 했다. 본청에서 내려오는 공문을 학교에 보내고, 학교에서 보내온 자료를 정제하여 본청에 다시 보내는 작업을 하면서 그 어떤 전문적 지식도 필요 없는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장학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하는 장학사의 정체감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고민은 시간이 흘러도 마찬가지이다. 업무의 재구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장학사의 정체감에 대한 고뇌는 계속 될 것이다.

경력이 쌓이게 되면 인사업무를 맡게 된다. 교원의 정원 관리, 휴직, 복직 관리, 교원의 평정, 전보, 호봉, 퇴직, 표창, 성과상여금, 강사 관련 업무 등이 인사업무들이다. 일반 장학업무와 달리 인사업무는 정확성을 가장 필요로 한다. 지역청 규모에 따라 교원 수는 다르지만 학교급 별로 2,000명이 넘는 교원들의 수급을 관리한다. 인사에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특히, 전보업무를 맡게 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된다. 숫자 하나가 사람 한 명을 의미하므로 혹시 한 명을 덜 카운트했거나 더 카운트했는지 모를 일이기 때문에 그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9월부터 이듬해 2월 전보가 발표될 때까지 단 하루도 초과 근무를 안 한 날이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주말을 단 하루도 쉰 적이 없다. 그렇게 해도 전보는 본전이다. 어느 학교에 한 명이 덜 배정된 것은 차라리 문제가 아니다. 신규교사를 배치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숫자를 잘못 기록하여 한 학교에 한 명을 더 배치하게 되면 이것처럼 골치 아픈 일은 없다. 그 중의 누구를 다른 학교에 배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도 보람이 있었던 것은 학교를 지원했던 일이다. 교생실습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학교를 방문하여 교생실습을 담당하는 교사들의 수업을 참관한 후 그들과 함께 수업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 교사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장학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동료 장학사들과도 함께 토론했던 일. 교사들이 원하는 연수를 교사들과 함께 기획했던 일, 학생들의 토론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독서캠프를 운영했던 일 등 현장과 함께 고민하고 실행했던 일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것이 보람으로 남는 것은 장학사의 역할이 바로 현장을 춤추게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교사가 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할 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장학사는 그렇게 선발된 교사 중에서 긴 시간 치열한 공부 끝에 엄청난 경쟁을 통해 선발이 된다. 그렇게 선발이 되었기 때문인지, 혹은 장학사 개인의 성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많은 장학사들은 업무상 실수에 대해 스스로에게 절대 관대하지 않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업무의 실수가 마치 자신의 능력의 부족을 나타내는 척도인 양 실수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그리고 이를 결코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인사 업무를 하던 시절 A학교에 발령공문을 내면서 공문 내용에 B학교로 표기해서 내보낸 적이 있다. 꼼꼼히 본다고 해도 자신이 작성한 공문에서 실수를 찾기란 매우 어렵다. 그렇게 발송된 공문을 수정발송하면서 얼마나 자신을 탓했는지 모른다. 끝없이 자학하고 자학했다. 그때 한 교감선생님께서 ‘누구나 실수한다. 나도 수천 번의 실수를 했다. 그런데 그 실수 때마다 마음을 다치면 이 업무를 못한다. 실수를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나도 실수할 수 있다는 너그러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라고 하신 말씀이 두고두고 위로가 되었다. 물론 그 말씀은 실수를 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므로 그로 인해 너무 자신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소리이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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