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관리자로서의 역할 어떻게 할 것인가? 관리자와 평교사 사이에서 조정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그 임무다. 하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부장을 기피하는 것이 담임을 기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연초마다 반복되는 행태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방안이 돌출되지 못하고 있다. 업무는 배정해야 하겠고, 자발적인 부장 지원은 드물어 억지로 앉혀 놓아야만 하는 폐단이 무언가를 새롭게 생각나게 한다. 인사가 관리자의 권한이기에 교사의 지원에 상관없이 배치할 수 있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배정 뒤에 나타나는 불만과 경력 부족은 업무의 비효율성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중간관리자든 담임이든 왜 교사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기피하게 되었는지를 현 시점에서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대의 흐름이다. 학부모의 지나친 간섭이다. 학생의 방종이다. 교육청의 학생 통제 수단 제시가 모호하다. 이런 것 외에도 더 많이 존재하지만 우선 지적만 해도 이렇다. 교사에게 다가오는 업무 부담은 많은데 그에 따른 준비는 부족하고, 혜택도 부족하다. 이제 교사도 가난을 무릅쓰고 학생을 가르쳐야 하고, 자신을 희생해 학교에 헌신하는 그런 자세는 이미 사라
중학교 자유학기제, 허와 실을 따져보고 확대해야 한다. 자유학기제가 확대된 것은 궁극적으로는 기존의 패러다임에 대한 회의감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다양화되어 가는 사회에 발맞추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자유학기제가 확대돼 학생들이 하루 아침에 자신의 진로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더 많은 진로 체험을 할 수 있었다고 자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제도가 시행된 지 3년이 지난 지금 학생들이 진로를 확고히 결정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있는가? 중학교 진로 담당 선생님뿐만 아니라 담임 선생님도 학생의 진로에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갈 길을 안내해 지도하고 있는가에 의심을 갖게 되는 것은 대학입시가 발등에 떨어진 상황에서도 학생들의 방황은 여전하기 때문이다.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이 아직도 한겨울에 부는 바람처럼 차갑기만 하다. 연수원에서 교사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연수에는 여러 분야가 있다. 교사들 중에는 성과급을 받기 위해서 연수 시간을 채우기도 하고, 승진을 위해 연수 시간을 메우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연수가 교사 개개인의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듣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다. 학교들은
외국어 교육 이대로 좋은가?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되는 외국어 수업이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독해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회화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구별하기 어렵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영어 회화를 배운다고 학원에 다니다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회화 중심의 수업은 어느 새 사라지고 만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엄연히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보아도 회화를 하기에 필요한 정도의 어휘, 말하기, 듣기, 문법 등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의심을 확인해보고자 학원가에서 영어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이 학원 저 학원을 방문하곤 했다. 학원마다 회화 중심으로 가르치는 학원은 찾기 어려웠다. 어학원으로 허가를 받은 곳도 회화 중심으로 가르치기보다는 원생들이 학교 시험에서 점수를 더 받기를 원하는 쪽을 선택하다 보니 독해와 문법 중심이 수업의 기본 틀이었다. 중학교 1·2학년에서는 과목마다 90점을 넘으면 A등급을 받고, 3학년이 되면 영어는 상대평가로 등급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등급 간의 차이도 미미한 상태라 낮은 등급을 받았다 하더라도 영어를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영어 회화에서 A등급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인가에 늘 의심을 하곤
초등학교 교사 선발, 학과성적만이 만능일까?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최근에 대학입시 추세를 들여다 보았다. 어느 과에 지망하는 학생이 많은지, 어느 학과가 높은 점수를 유지하는지, 여학생이라면 여러 교육 계통과 간호학과를 들 수 있고, 남학생이면 의예과와 전자공학과를 외면할 수 없다. 그리고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선호하는 학과는 연극영화학과가 아닌지. 좀 더 구체적으로 평가내용을 살펴보면 사범대와 교육대에서도 여느 다른 대학의 학과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특별한 봉사활동이 필요하다거나 교사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특별한 포트폴리오가 있어야 된다든가 하는 절대 조건도 없다. 아주 높은 점수에, 최상위에 가까운 등급을 획득해 면접을 통과하면 합격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범대나 교육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재원들이 학교 현장에 임용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학부모로부터 존경받고 학생으로부터 사랑받는 엘리트 졸업생이라고 정평이 나 있는가? 선생님은 우수한데 학생들이 따르지 못하기에 학교 현장은 언론에 단골 메뉴처럼 보도 대상이 되고 있는가? 무엇이 문제일까? 답은 어디에 있을까? 어떤 요인이 충족되지 못했기에 오늘의 교사들이 핍박받는 신세가 됐고 학
교생실습 제도는 바꾸어야 한다. 교생실습은 현장에 나갈 교사로서 무엇을 준비하고 현장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배우는 절차이기에 사전 답사 형식을 띤다. 그런데 이 제도가 지금까지 내 교육 경험을 통해 정리해 보면 고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교생이 배워야 할 현장 실습의 구체적인 과정을 학교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교사가 안내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왜냐하면 교생을 위해 시간을 만들어 내기가 현재 학교 교육과정을 고려해 볼 때 그렇게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교생이 현장에 투입되었을 때 현장의 여러 부장과의 대화와 상담을 통해 업무를 충분히 익혀야 하지만 그런 제도적 절차와 그에 따른 점수를 받는 과정도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교생을 파견하는 대학 당국은 교생을 일선 현장에 투입만 하고 그 외 일정은 현장 학교의 손에 맡기고 있다. 현장 학교의 운영이 수월하면 그래도 교생에게 무언가를 안내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교생에게는 4주간이 형식적인 과정을 거치는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학교 현장에서도 교생에게 좋은 평가를 해서 대충 보내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교생제도가 유명무실한 상태로 스쳐 지나가다 보니 해마다 찾아오는
퇴임 교사가 바라보는 교직 사회의 첫 단계 변화는 교육대학과 사범대학 교육과정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사범대나 교육대학에서 배우고 있는 ‘교육심리학’ 과목이 현재의 시점에도 잘 맞아 떨어지고 있을까? 하는의구심 때문이다. 오늘날 학생들은 각종 병리 현상을 겪으며 생활하고 있다.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 현실, 가속도를 붙여 달려가는 학교 주변의 환경, 이런 상황에서도 교육관련 기관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육심리학 내용이 수 년 동안 시대의 변화를 거치지 않고 내려오고 있지는 않는지. 선진국으로 도약을 거듭하는 동안 가정(家庭)과 주변의 환경 변화는 학생들의 심리적 동요를 초래했다. 이혼이다. 핵가족화다. 가족 간의 개성의 뚜렷한 표출이다. 웃어른도 이웃도 도외시하는 풍조가 만연돼 간다. 등등에서 온정은 매몰되고 냉혈동물적 사고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친구를 때려서 죽이고, 왕따 시켜 죽이고, 스스로 현실의 이념을 이겨내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 이들이 겪는 아노미 현상을 치료해 줄 곳은 학교에서는 아무 곳도 없다. 각종 질환은 메아리쳐 들려오고 있는데 학교 환경은 위 클래스를 설치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비록 설치되었다고는 하나 정상적인 역할을 하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