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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서평) 가만 있어도 웃는 눈


 책 읽는 데 취미가 있는 데다 교사라는 직업 때문인지 동화책을 자주 접하게 된다. '창비어린이' 출판사에서 개최한 '제3회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창작부문 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세간의 조명을 적지 않게 받은 이 작품을 읽으면서 뭐랄까,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 없어 몇 글자 끼적거려 본다.

 비교적 풍요롭게 살던 한 가정, 가장인 아빠가 실직을 하게 된다. 아빠는 건강상의 이유로 요양을 목적으로, 또 한편으로는 평생의 소원이었던 목동(?)의 꿈을 이루기 위해 뉴질랜드로 떠나고, 엄마는 힘든 카피라이터 일을 하면서 두 아이를 떠맡는다. 아쉬움 없이 살던 가족들은 졸지에 반지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엄마와 함께 이 미련조차 없을 것 같은 땅에 남은 두 아이들은 순박한 동심에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은 그런 상황, 하지만 그런 아이들을 붙들어 준 건 사실 열심히 살려는 엄마의 의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자기들 내면에서 우러난 현실 자각 능력 역시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맘때면 누구나 그랬듯이, 또래 친구들에게서 느끼는 정서적인 안정감이 무엇보다도 큰 역할을 했고, 전혀 대도시라는 주변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전원적인 그들의 집 주변의 일상적인 풍경들과 모습에서 두 아이는 급격하게 변화된 불안정한 환경에 서서히 적응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소설가 박완서씨가 "그런 일(IMF와 관련된 일련의 주제들)은 조금도 신기할 게 없는 이 시대의 가장 우울하고도 진부한 리얼리티이다. 외면할래야 외면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오히려 아이들에겐 안 보여 주고 싶기도 하고, 동화에는 이 구차스러운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최소한의 환상의 힘이라도 있길 바라는 마음에도 어긋난다. 그런 생각으로 읽었는데도 이 동화가 재미있고 참신하기까지 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등잔 밑에 오히려 신기한 게 숨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가장 가까운 그늘에서 들춰낸 리얼리티가 새롭게 빛나 보인다."라고 추천사에서 밝히기까지 한 이 작품...... ("가만 있어도 웃는 눈", 이미옥 저, 창비, 4쪽) 

우리 나라에서 가장 인정 받는 소설가 중의 한 사람인 그 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이 책을 추천했다면 분명 타당한 얘기이겠지만, 정말 이 작품이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가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대문호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다 읽고 난 뒤에 밀려드는 씁쓸함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실직이라는 어찌 보면 자연적이면서도 지극히 보편적인 그런 현상에 대처하는 부모의 자세가 이야기를 읽는 내내 많이 무책임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누구든 그럴 것이다. 실직을 하면 생활정보지를 집안에 가득 쌓아놓고서 여기저기 전화를 해 댈 것이고, 멀든 가깝든 그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 노력하는 것이 당연한 가장의 역할일 텐데, 이 가장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머나먼 곳으로 떠나 버린다.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떠나게 된 그 이주가-물론 적극적인 자신의 의지에 따른 선택이었다거나 혹은 단지 꿈의 실현만을 위해 비행기에 오른 건 아닐지라도- 한낱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자의 호기로 비친 것은 비단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분히 부정적이기 때문일까?

가족들의 그나마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집을 처분(제법 값 나가는 집이라도 있어서 그를 처분하고 떠났지만, 좀더 냉정히 우리들의 현실로 돌아와 생각해 본다면 그런 팔 것조차 하나 없는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에겐 그의 행동은 지나친 사치가 아닐 수 없다)하고 떠나버린 아빠, 아무리 배우자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고는 하나 자라나는 두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의 선택은 분명 잘못되었다. 그렇잖아도 더 어려워진 경제적 난관을 직접적으로 타개하기는커녕, 두 아이를 키워가며 홀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아내가 보내 준 돈으로 이주 생활의 밑천을 삼는 그런 상황들이 정상적인 상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일일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니던 멀쩡한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엄마 역시 그렇게 실직을 하고 만다. 물론 엄마는 방금 말했던 그런 적극적이면서도 경제적인 난관 타개책을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의 흔적을 보이긴 했지만, 결국엔 엄마 역시 학창 시절 꿈이었다던 작가되기를 소망한다. 엄마는 그래서 글을 쓴다. 습기가 눅눅하고 온갖 시끄러운 소리들이 다 스며들고 열악하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는 자신의 아이들을 외면(?)하고 말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그래서 더욱 절망적인 심정으로 글쓰기에 매달렸겠지만)은 이해가 가지만, 카드 빚에 시달리고 차를 처분하면서까지 어려워진 형편에 원고를 보내놓고 당선을 기다리는 그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자식(두 아이들의 엄마)이 그렇게 사는 걸 보고는 아이들의 외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다 집어치우고 나 따라 가자!"고. 만일의 경우에 도피할 수 있는 그 어떤 곳, 혹시라도 그런 경제적인 여유를 최후의 보루로 하고 있었기에 엄마가 그렇게 행동한 건 아닐까?
 
평생의 꿈이었던 목동을, 그리고 소싯적 꿈이었던 작가를, 그것도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에 그와 같은 꿈들을 열망하는 엄마와 아빠의 행동을 어찌 무책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난 이 두 부모가 자식들에 대해서, 아니면 적어도 헤쳐 나가기 힘든 시련을 맞닥뜨린 상황에서 대처한 그들의 행동은 분명히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불우해져 버린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사람들에 절대적인 믿음과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이고 순수한 마음의 끈만큼은 놓치 않게 했던 작가의 역량이나, 일상 생활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아빠와 엄마가 실직을 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는 그 정도 선에서의 이야기까지만 해당되지 않을까?-를 작품 내내 흐르는 잔잔한 감동으로 이끌어 간 작가의 그 섬세한 관찰력과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인(사실, 긍정적이다못해 너무 이상향을 꿈꾸고 있지만) 자세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지만, 그래도 작품 구석구석에서 너무 비현실적인 작가의 생각을 개입해 놓은 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시대를 힙겹게 살아가는 소위, "기러기 아빠들"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삶의 태도를 보이는 작품 속의 무책임한 아빠, 그리고 지금도 그다지 많지 않은 돈(대부분은 물론 아이들 사교육비에 충당된다는 것쯤은 누구나가 알고 있다)에 몸과 마음이 사그러들면서까지 온갖 잡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엄마들"에게도 어쩌면 자신의 보다 더 가치있고 고결한 삶에 매달리라고 충고하는 듯한 작품 속의 무책임한 엄마를, 작가가 그려 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불쾌감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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