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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의 발견 1_대한민국에서 제자로 살아가는 행복

벌써 50년이 넘었을까?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이미 가을걷이가 끝난 길가 배추밭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고 밭이랑은 서릿발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 서릿발 위로 뽀드득 하는 소리를 내며 학교 쪽으로 걸어가는데 뒤에서 낯익은 부드러운 소리가 들렸다.

“헌구야, 학교 가니?”
“선생님!”
“그래, 서리가 와서 춥지?”
“네, 손이 시려요. 가방 때문에요.”
“그래, 손이 많이 차겠구나, 어디 한 번 만져보자.”
“네……?”
“음, 장갑이 없구나.”
“네, 동생이 가져갔어요.”
“그런데 추워도 손을 깨끗이 씻어야지. 병균도 그렇고 다른 애들이 보고 게으르다고 흉보면 어쩌지?”
“네, 알겠어요.”
“너는 학교에선 글짓기도 하고 붓글씨도 잘 쓰고 선생님 말도 잘 듣는데 집에서 엄마 말씀도 잘 듣지?”
“아니에요. 동생들이랑 매일 싸워요. 그래서 혼나요.”
“잠은 어떻게 자니?”
“가게 뒷방에서 여섯 명이 같이 자요.”
“음, 그렇구나. 너 이번 토요일에 선생님 집에 놀러오지 않겠니?”
“네? 좋아요. 가고 싶어요. 그런데 선생님 댁은 멀다고 그러던데요?”
“그래도 선생님하고 이야기하면서 가면 금방 갈 수 있단다. 우리 같이 가서 선생님하고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또 같이 자고 놀자. 오늘 가서 엄마한테 토요일은 선생님 집에 가서 자고 온다고 미리 말씀드려라. 알겠니?”
“네, 선생님 알겠어요.”

털장갑을 끼신 선생님은 한손으로는 도시락 봉투를 드시고 다른 한손으로는 코 묻은 내 손을 잡고 걸어가셨다. 가끔 선생님이 손을 바꾸실 때마다 도시락의 온기가 내 손까지 느껴지곤 했다. 그렇게 학교에 도착해 선생님은 교무실로 가시고 나는 교실로 뛰어갔다. 그때의 가벼운 발걸음, 그 뿌듯했던 기분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체육시간에 무섭기로 소문난 대머리 총각 선생님, 그 공포의 선생님으로부터 그렇게 부드러운 말을 듣다니! 정말이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거의 손발이 떨릴 지경이었다.

지루하기만 했던 수요일과 목요일이 지나고 드디어 금요일 밤, 내일이면 선생님 댁에 간다는 생각밖에 다른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물론 엄마의 허락은 일찌감치 받아두었다. 그러나 동생들과 친구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말을 하면 나만의 소중한 그 무엇이 선생님 머리처럼 벗겨질 것만 같았다.

드디어 토요일, 수업을 마치자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은 다 집에 돌아가라고 하시면서 나에게는 교무실로 오라고 하셨다. 나는 선생님을 따라갔다. 선생님은 책상을 정리하시고 코트를 입으셨다. 역시 장갑을 끼시고 도시락 봉투를 들고 앞장서서 걸으셨다. 나는 반은 뛰고 반은 걸으면서 열심히 선생님 뒤를 따라갔다. 학교 운동장을 벗어나고 시내를 벗어나 촌길로 들어설 때까지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나도 묵묵히 따라가기만 했다. 아무도 없는 논길이 나왔다. 그제야 선생님이 뒤를 돌아보셨다.

“너 손 시리지?”
“네, 괜찮아요.”
“이리 와라. 난 장갑이 있으니까 손잡고 가자.”
“네!”
“그런데 가게에서 살면서 학교에 다니니까 공부하기가 힘들지?”
“괜찮아요, 재미있어요. 사람들도 많이 보고요.”
“아빠 일도 많이 도와 드리니?”
“네, 펌프질이요. 염색을 하니까 물을 많이 써요. 그래서 동생하고 둘이서 하루 종일 펌프질을 해요. 그러면 엄마는 염색한 옷을 헹구고 아빠는 불을 때고 물을 끓여서 염색을 해요. 그런데 펌프질을 안 하면 아빠한테 혼나요.”
“아빠가 무섭니?”
“네, 아빠는 손가락이 없어서요.”
“손가락이?”
“네, 그전에 일본 공장일 하실 때 다치셨대요, 그냥 보면 무서워요.”
“음, 그러니까 네가 공부를 많이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알겠니?”
“네, 알아요.”

어느덧 학교에서 8킬로미터나 떨어진 선생님 댁에 도착했다. 초가집이긴 했지만 방도 세 개나 있고 선생님의 방은 따로 있었다. 선생님은 마당에 서서 멀리 보이는 산 이름도 가르쳐 주시고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냇물의 이름도 가르쳐 주셨다. 선생님은 그곳에서 태어나서 계속 그곳에 살고 계신다고 하셨다. 방으로 들어가서 선생님의 책상과 책꽂이에 있는 책들을 구경했다.
선생님은 그 중 한 권을 꺼내 내게 보여주면서 물으셨다.

“너 이 책 이름 들어봤니?”
“제인 에어…… 처음 봐요.”
“네가 지금은 잘 이해가 안 되겠지만 나중에 중학교에 가거든 꼭 한 번 읽어 보아라. 아무리 어려워도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거다.”
“네, 선생님. 꼭 읽을게요.”
그때 밖에서 선생님의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밥상 들여도 되겠니?”
“네, 어머니”
선생님이 대답하셨다.
“그래, 학생 손님 많이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런 밥상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침엔 감자밥, 낮엔 국수, 그리고 저녁엔 주로 수제비를 먹고 살던 나로서는 하얀 밥에 고기 넣은 무국과 장조림, 두부 지진 것과 시금치나물, 그리고 구운 생선…… 그야말로 환상적인 밥상이었다.

“맘껏 먹어라. 밥은 여기 또 한 그릇 있다.”
“선생님, 많이 먹을게요.”

식사를 하시면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런데 너는 왠지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될 것 같구나. 눈도 빛나고 말도 잘 알아듣고. 네가 마음만 잘 먹으면 너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게다. 내가 그동안 살펴보니까 너는 가능성이 보인다. 노력해라. 알겠니?”
“네.”
“그런데 아무리 힘들어도 세수하고 이 닦고 손 씻는 것을 잊지 마라.”

식사가 끝나자 선생님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꿈을 가지고 꿋꿋하게 생활하면 선생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셨을 것이다. 그렇게 선생님의 이야기는 계속되었고 내가 졸린 눈을 하자 선생님이 이불을 펴 주셨다.

아침에도 역시 저녁밥상 못지않은 따뜻한 상을 받았다. 식사를 마치고도 선생님은 여러 가지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드디어 이제 집으로 가라고 하시면서 나를 마당 밖까지 배웅해 주셨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너무나 좋아서 껑충껑충 뛰었다. 빨리 집에 가서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나도 선생님처럼 살아야지’하는 나름의 결의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이제 나이가 들고 자식을 키우고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씨름하며 살다보니 비로소 그때 그 선생님의 마음이 얼마나 따듯한 것이었는지, 얼마나 참 스승다운 사랑의 언어였는지, 생각할수록 눈시울이 젖어온다.

1961년 강원도 춘천 교동초등학교 6학년 2반 심태흠 선생님, 대한민국에서 제자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입니다. 선생님,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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