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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내린 마지막 칙령

오직 죽음 앞에서야 우리 모두는 생사를 초월하여 선해질 수 있다. 누군가는 사후의 깨끗한 명예를 원하고 다른 누군가는 삶이 주는 축복을 마지막 한 자락까지 누려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여기 죽어가면서도 세상 정치를 근심하던 진실한 사내가 한 명 있었다.



사람 인생에서 죽음처럼 비장하고 엄숙한 일도 없다. 자신의 생명이 소멸하는 순간 과연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소크라테스는 이웃에게 진 빚을 걱정했고 괴테는 커튼을 젖혀 빛을 더 비춰 달라 요구했다. 누군가는 사후의 깨끗한 명예를 원하고 다른 누군가는 삶이 주는 축복을 마지막 한 자락까지 누려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여기 죽어가면서도 세상 정치를 근심하던 진실한 사내가 한 명 있었다. 바로 공자의 제자 증자다.
증자는 임종을 코앞에 두고 최후의 숨을 들이키는 순간까지 훌륭한 세상을 꿈꾸었다. 그리하여 자신을 병문안하러 온 정치가에게 치자의 도리를 설파하다 절명했다. 그가 유언을 시작하며 했다는 말은 유명하다. ‘새가 장차 죽으려 할 때 그 소리가 애달프고, 사람이 장차 죽으려 할 때 그 말이 선하다(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 『논어』에 전해오는 일화다. 증자는 왜 이런 말을 꺼냈을까? 죽음을 목전에 둔 자야말로 삶에 더 욕심이 없고 욕심이 없으니 사사롭지 않으며 사사롭지 않으니 정직할 것이라는 뜻이다. 오직 죽음 앞에서야 우리 모두는 생사를 초월하여 선해질 수 있다.
『삼국지연의』의 주인공 유비(劉備)는 임종을 맞이하여 자신의 필생의 과업인 삼국통일의 임무를 현명한 재상 제갈량(諸葛亮)에게 맡겼다. 아직 어렸던 아들 유선(劉禪)에겐 짧은 유언 한 마디만 남긴다. 천하를 유랑하며 천하일통(天下一統)의 포부를 펼쳤던 노영웅은 우리 예상과는 달리 아주 소박한 표현만을 사용해 힘주어 이렇게 말했다.

(원문) 漢昭烈, 將終, 勅後主曰, “勿以善小而不爲, 勿以惡小而爲之.” 『明心寶鑑』「繼善篇」
(번역문) 한나라 소열황제가 죽음에 임하여 아들인 후주에게 칙령을 내렸다. “선이 작다고 하여 아니 하지 말 것이며 악이 작다고 하여 행하지 말 것이니라.” 소열황제는 유비의 사후의 시호(諡號)다. 후주는 아들 유선을 지칭한다. 『소학(小學)』이라는 책자를 통해 전해오는 이 얘기가 사실인지 여부는 중요치않을 것이다. 이 말 속에 담긴 곡진했던 한 아버지의 마음만 알아채면 될 일이다. 아버지 유비는 단호한 금지사를 두 번에 걸쳐 사용하며 간곡하게 부탁하고 있다. 첫째, 아무리 자잘한 일이라 해도 그것이 선한 일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행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한 일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하고 극적인 결단 같은 것을 상상한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영웅호걸들의 장렬한 삶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비가 말한 선한 일이란 그렇게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그저 일상생활에서 부딪히게 되는 소소한 일들 가운데에서 선할 것을 구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건 무슨 뜻일까? 선한 행동이란 평소엔 가슴 안에 감추고서 남몰래 벼리고 벼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발휘하는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자질구레한 삶의 매순간마다 습관처럼 반복하여 어느 순간 자기 몸에 밴 제이의 천성과도 같은 것이다.
복도에서 떠들지 않기, 길가에 침 뱉지 않기 등은 어쩌면 너무 자잘해 보여 간과하기 쉬운 예절이다. 하지만 그 사소해 보이는 행동들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결국 크나큰 무게가 되어 한 인간을 선하게도 혹은 악하게도 만드는 것이다. 선을 항상 네 삶의 지척에 두어라! 말하자면 유비의 유언은 그런 말이었던 셈이다. 둘째, 아무리 자잘한 일이라 해도 그것이 악한 일이라면 행하지 말라! 산전수전 다 겪은 유비가 보기에 세상에 횡행하는 악이란 그 조짐이 미세했을 것이다. 평소 엇나간 작은 언행이나 불량한 태도, 우연히 맛들이게 된 짓궂은 장난 등 언뜻 예사롭게 넘길 일들 속에서 큰 악행이 자라나게 된다. 악한 짓도 습관이라서 중독성이 있고 악에 중독된 자는 늘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비는 아들에게 자신의 소소한 악에 결코 면죄부를 주지 말 것을 명하고 있다. 제방을 무너뜨리는 것은 언제나 작은 틈새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유비의 이 유언을 읽을 때마다 근대 중국의 문호였던 주자청(朱自淸)의 산문 <아버지의 뒷모습>이 함께 떠오르곤 한다. 남경역에서 북경으로 떠나는 아들을 배웅하던 주자청의 아버지는 뚱뚱한 몸을 이끌고 아들에게 줄 과일을 사기 위해 턱이 높은 철로를 힘겹게 왕복한다. 아버지의 힘겨운 그 뒷모습을 기억한 아들은 열심히 공부하여 중국을 대표하는 문장가로 성장했다. 우리 모두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 하나쯤은 품고 있을 것이다. 그런 뒷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한 쉽게 타락하지 못할 것이다. 유선의 아버지 유비 역시 아들에게 결코 잊히지 않을 뒷모습 하나를 선물했던 건 아닐까?
아버지의 유언은 생전의 매서운 채찍보다 강렬하고 또 영원하며 지워지지 않을 흔적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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