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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무가 가르쳐준 지혜

소문보다 무서운 무기가 또 있을까? 확인되지 않은 소문은 입을 거쳐갈 때마다 하나씩 보태져 한 사람의 삶을 겨냥한다. 후한의 핵심권력자였고 현명한 처세술까지 갖췄던 마원도 괴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후 마원은 耳可得聞 口不可言也(귀로는 들을지언정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된다)'라며 가족들을 단속했다. 마원의 속사정을 들어보자.



후한(後漢)을 대표하는 맹장이자 지략가였던 마원(馬援)은 늙은 나이임에도 자주 출정했다. 그를 아끼던 광무제(光武帝)가 걱정할 정도였다. 그러면 그럴수록 마원은 주변 세력 정벌과 반란 진압에 열성적으로 뛰어들곤 했다. 여북하면 ‘늙을수록 기운이 강성해진다’는 노익장(老益壯) 고사의 주인공이 마원이었겠는가! 아무튼 흰 수염의 늙은 장수는 지금의 티베트와 베트남을 오가며 용맹을 떨쳤다. 수도였던 낙양에서 요족한 생활을 누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왜 이런 무모한 삶을 선택했을까?
마원은 전한(前漢)을 무너뜨리고 신(新)을 건국했던 왕망(王莽) 밑에서 벼슬살이를 시작했던 사람이다. 왕망과 뜻이 맞지 않았던 마원은 결국 광무제를 도와 왕망 정권을 무너뜨리고 한 황실을 재건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후한 정권의 핵심 중추이자 황실을 다시 일으켜 세운 일등공신이었던 셈이다. 그런 그가 수도에서의 안락한 삶을 멀리하고 전쟁터로 뛰어든 까닭은 바로 주위의 질투와 의심을 멀리하기 위해서였다. 왜 그랬을까? 새로 나라를 세운 황제는 초반엔 권력이 취약하여 주변 원로대신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 와중에 대신들은 자기도 모르게 황제를 업신여기는 모양새를 만들 수도 있다. 이를 마음에 새겨둔 황제는 언젠가 핑계를 잡아 자신을 도왔던 위험한 이인자들을 처단하게 되어 있다. 마원은 이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마원의 현명한 처세는 성공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가 지금의 북부 베트남 지역을 정벌하고 낙양으로 귀환할 때 주둔지에 창궐하던 풍토병을 치료하기 위해 복용하던 약재 일부를 수레에 싣고 돌아왔던 모양이다. 그게 율무였다. 그런데 궁궐에선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마원이 남방의 진주를 황제 몰래 잔뜩 싣고 돌아왔다는 괴담이었다. 평소 마원의 행적을 주시하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 흉흉한 소문은 사실로 둔갑했고 끝내 마원 일가는 한바탕 혹독한 곤욕을 치르고 만다. 자신을 노리던 간사한 혀들을 피해 평생 군막에서 고생했던 마원조차도 이처럼 비방의 화살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원문】
馬援曰, “聞人之過失, 如聞父母之名, 耳可得聞, 口不可言也.” 『明心寶鑑』「正己篇」
【번역문】
마원이 말했다. “남의 잘잘못에 대해 듣게 되거든 자기 부모님 이름을 들은 것처럼 하여 귀로는 들을지언정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되느니라.”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비방꾼들을 측근으로 두고 남의 험담 듣기를 즐겨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남의 약점 들추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정보를 주고받는 동시에 새로운 소문도 생산한다. 소문의 소비가 곧 생산에 연결되고 듣기가 곧 말하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구조다. 온갖 감언이설로 인한 왕조의 흥망을 목도한 마원은 이 점을 분명히 숙지하고 있었을 터이다. 가뜩이나 그는 황제의 총애를 입으며 많은 정적들의 눈초리에 노출돼 있었다. 자칫 누군가의 독한 혀에 집안이 풍비박산날 수 있었고 하지도 않은 짓에 연루되어 비명횡사할 수도 있었다. 어찌 해야 했겠는가?
마원은 우선 정적들이 우글대는 궁궐로부터 물리적으로 벗어났다. 보이지 않으면 말할 거리가 적어지고 그러다보면 잊힌다. 아무리 큰 공훈을 세워도 수도인 낙양에서 이를 누리지만 않는다면 적어도 질투의 표적에선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온 일족이 낙양을 떠나 있을 순 없다는 점이다. 일가붙이 한명이라도 교만에 빠져 미움을 산다면 이는 곧 마원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질 것이었다. 인용문은 마원의 이런 고민으로부터 나왔음에 틀림없다.
위의 인용문은 마원이 조카들에게 훈계한 내용의 일부다. 친자식들은 어떻게든 단속할 수 있었겠지만 형의 자식들까지 직접 통제하긴 힘들었기에 구구절절 훈계하고 또 훈계했던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자. 마원은 조카들이 남의 과실에 대해 듣는 것 자체를 막지는 않았다. 그건 불가능하기도 하거니와 아예 듣지 조차 않는 것 역시 의심 살 행동인 탓이다. 듣기는 하되 그것으로 멈춰라! 들은 내용을 다시 옮기지 마라! 마원의 요점은 소문의 진상 여부가 확증되지 않는 한 소문의 재생산 시스템에 뭘 덧보태지 말라는 데 있다. 듣지도 판단하지도 않은 채 바보로 살라는 뜻이 결코 아니었다.
귀가 있는 한 누구도 듣는 죄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죄가 안 된다. 하지만 말의 죄는 얼마든 회피할 수 있었기에 근원적인 죄다. 아니, 진실에 대한 확인 없이 하는 막연한 비방은 단순한 공모가 아니라 적극적인 인격 살인이다. 영화 <올드 보이>는 그 말의 죄를 인류의 원죄로 그려내고 있다. 누군가에 대한 엉뚱한 소문을 전파한 것만으로도 타인의 삶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한 공격은 칼로 한 것보다 더 깊은 상처,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화인(火印)을 만들고야 말 것이다. 마원 입장에서 그건 원수를 만드는 길이었기에 남에 대한 험담을 들으면 자기 부모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듯 함부로 입에 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다.
마원은 역사의 갈림길에서 중대한 결단을 하고 후한제국을 건설한 영웅이었다. 그런 그가 남의 인심이나 잃지 말자고 조카들에게 입단속을 했을 것 같진 않다. 그는 자신의 막중한 사명을 알았기에 설화(舌禍)로 인한 정쟁을 피하고자 했고 이를 통해 제국이 영원하길 바랐을 것이다. 조기에 몰락한 제국들의 특징이 개국공신들의 반목과 반란 때문이었음을 그가 몰랐을 리 없다. 한 나라가 그러하며 한 사회가 그러하고 한 가족도 그러하다. 나중에 알고 보면 무의미하고 어처구니없는 말의 실수가 인간관계를 동강내고 만다. 무책임한 인터넷 악플로 인한 사회적 소동도 결국은 말의 남용에 기인한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남의 말을 경청하되 과실을 지적하는 말만은 가슴 속에만 오래도록 간직하는 습관을 들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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