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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오래갈 친구, 도우(道友)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영원할 수 있다. 조건이 따라 붙는 순간, 막역함은 사라지게 된다. 어떻게 하면 ‘막역지우’를 얻을 수 있을까? 공자는 ‘善與人交, 久而敬之’라는 말을 통해 답을 구했다. ‘존경할만한 도’를 지닌 사람을 벗으로 할 때, 조건 없는 진정한 교제를 할 수 있다. 율곡이 말한 도우(道友)만이 오랜 세월 더불어 함께할 수 있는 친구인 까닭이다.


오랜 세월 흉허물 없이 지내는 벗을 막역지우(莫逆之友)라 부른다. 막역하다는 표현 속에는 무슨 짓을 해도 상대방 마음을 거스를 일 없을 거라는 절대적 믿음이 담겨있다. 때문에 서로 막말하며 방심하는 사이를 막역하다고도 한다. 하지만 ‘막역’이란 서로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레 몸에 배어 의식적 노력이 불필요한 관계를 뜻할 뿐, 상대에게 마음대로 굴 수 있는 방만한 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막역해지기 위해선 오랜 세월 쌓인 관심과 애정 그리고 속 깊은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오랜 세월 막역함을 유지할 진정한 벗을 얻을 수 있을까? 율곡 선생은 친구 많기로 유명했던 후배 윤근수에게 보낸 충고의 편지에서 벗을 세 종류로 나눴다. 먼저 문우(文友)가 있다. 이는 서로의 취향과 호오를 이해하기에 심미적 삶을 함께할 수 있는 벗이긴 하지만 취향이 바뀌면 쉬이 변한다. 다음으로 벼슬살이를 함께하는 환우(宦友)가 있다. 이는 험난한 관직 생활에서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지를 의미하는데, 정치적 이해관계가 갈리는 순간 사이도 틀어지게 마련이다. 끝으로 영원한 진리인 도를 향해 함께 걷는 도우(道友)가 있다. 오직 도우만이 세속의 이해타산과 관계없이 변하지 않는 신뢰를 낳는다. 율곡 선생은 서인(西人)으로서 파당 만들기에 몰두해 있던 윤근수에게 도우를 곁에 두라고 촉구했다.
결국 진정한 막역지우란 도우다. 벗의 내면에서 불타고 있을 진리를 향한 열정을 사랑하는 한 서로의 우정엔 변함이 없을 것이기에 그 밖의 소소한 예범이란 부수적인 것이 된다. 그렇다면 막역지우를 얻는 비결은 속된 관계술에 있지 않고 애초 누구를 벗으로 선택하느냐에 달렸음이 밝혀진다. 오래 존경할 수 있는 사람, 배울만한 점이 많은 사람을 벗으로 삼으면 그 사귐은 장구하고 항상 생산적 긴장으로 충만할 것이다.

【원문】
子曰, “晏平仲, 善與人交. 久而敬之.”
『明心寶鑑』「交友篇」
【번역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평중은 사람 사귀기를 잘 했었다. 사이가 오래됐는데도 공경함을 잃지 않았나니.”


안평중은 제나라를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로 만든 춘추시대 명재상이었다. 그는 높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극히 낮췄다. 아침에 출근할 때 자신의 수레를 끄는 마부보다 더 공손한 태도를 취해 이를 본 마부의 아내가 내실 없이 거드름만 피우는 남편을 힐난했다는 고사는 유명하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겸손하게 만들었을까? 정답은 율곡 선생이 말한 도우에 있다.
안평중은 사람의 내면에 있는 도를 벗하였다. 세상이 잘 돌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도로 본 그는 도가 있는 모든 사람을 존중했고, 따라서 수레 모는 기술을 지닌 자신의 마부 또한 존중했던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온통 도를 지닌 스승으로 넘쳐났을 터, 어찌 감히 건방진 마음을 품을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바로 안평중이 제나라를 강국으로 만들고 스스로 이름난 재상이 된 비결이기도 했으리라.
물론 마음에 담긴 어진 심성을 도의 근본으로 본 공자는 지나치게 실용적인 안평중의 세계관 전부를 인정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상대방이 지닌 장점을 잘 알아보고 그 장점을 기꺼이 인정했으며, 나아가 이를 존중할 줄 알았던 안평중이야말로 공자가 상상했던 훌륭한 정치가에 가장 가까웠음에 틀림없다. 훌륭한 정치가란 결국 사람 잘 사귀는 사람 아니겠는가?
존경할만한 도를 지닌 사람을 벗으로 삼을 때 진정한 교제를 시작할 수 있으며, 또 그 교제가 오래갈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교제는 오래갈 수 있을 경우에만 막역해질 수 있기에 이른바 막역한 친구 관계란 오직 도우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프로필
윤채근 _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하고 현재 단국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양 저서로 <논어감각>, <신화가 된 천재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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