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4일. 오늘은 24절기의 첫번째인 입춘(立春). 입춘추위라는 말도 있지만 오늘은 포근한 봄날씨다. 들에 나가보니 냉이를 캐는 아낙네들의 모습도 보인다.
대도시 아파트에 사는 현대인에게 입춘의 의미는 무엇일까? 입춘날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핵가족 시대에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가르칠 사람도 없다. 그냥 달력에 있는 것을 보고 '오늘이 입춘이네'하고 중얼거리고 마는 정도이다.
마침 장인어른께서 입춘의 의미를 일깨워 주셨다. 입춘 전날, 출가한 자식들을 불러모아 손수 붓글씨로 쓰신 입춘첩(立春帖)을 나누어 주셨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 입춘날 해뜰 무렵 집안의 소원을 빌면서 아파트 문에다 붙이라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아내와의 결혼 후 처가 출입문에 늘 이 맘때쯤이면 입춘첩을 본 기억이 난다. 그것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제 그것이 자식들에게 퍼진 것이다. 한자(漢字) 세대가 아닌 자식들에게 손수 써서 돌리는 아버지의 마음이 무엇인지 짐작이 간다.
리포터가 어렸을 적만해도 집집마다 대문에 입춘첩이 붙어 있었다. 뜻도 모르고 어른들을 따라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을 큰소리로 읽었다. 요즘엔 민속촌이나 한옥마을, 전통풍습이 이어져 내려오는 마을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다.
관련 책자를 보니 입춘첩 문구가 나온다. 수여산(壽如山) 부여해(富如海)[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해지기를], 거천재(去千災) 래백복(來百福)[모든 재앙은 물러가고 모든 복 들어오기를],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나라는 태평하고 국민은 편안하여 집집마다 풍족하고 사람마다 넉넉하기를] 등.
인터넷을 검색하니 오신채(五辛菜)[입춘날 먹는 음식으로 다섯 가지 매운 맛이 나는 나물], 적선공덕(積善功德)[입춘이나 대보름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꼭 해야 일 년 내내 액(厄)을 면한다는 민속] 등이 나온다. 그 속 뜻을 알아보니 우리 선조들의 더불어 사는 지혜가 엿보인다.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 세시 풍속에 나타난 여러가지를 이어 갈 수는 없지만 입춘의 의미를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24절기의 의미 지도를 학교 교육에서도 손을 놓아 버린지 오래다. 가르칠만한 선생님이 아니 계시고 무엇을 가르쳐야 할 지도 모른다. 그들 역시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집 아파트 출입구에 붙어 있는 입춘첩. 장인어른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고 처가의 풍경이 떠오르지만 왠지 외롭게 보인다. 앞으로 누가 이 정신을 이어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