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 한 귀퉁이에 아직 수확하지 않은 감나무가 있어 눈길을 끕니다. 매서운 겨울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듯 얼굴이 새빨갛게 익었습니다. 첫눈에 이어 두 차례의 겨울비에 잎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얼었다 녹은 감만이 그 붉은 정열을 간직한 채 주렁주렁 매달려있습니다. 아마 한겨울까지 저렇게 매달려있다면 설화 속의 홍시를 보는 행운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교닷컴 독자님들도 기대하시길….
새벽녘에 내린 서리에 살짝 얼었던 겨울배추가 아침이 되자 녹고 있네요. 김장독에 들어가기까지 이렇게 여러 날을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다보면 배추는 어느새 단단하게 속이 차고 단맛이 깊게 배인다니 이 세상에 시련 없이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나봅니다.
탐스런 알맹이를 탈취당한 고춧대. 한여름 뜨거운 땡볕과 대결하며 인내하던 고추가 어느새 희나리만 잔뜩 매달린 초라한 고춧대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글거리던 태양을 등에 받으며 허리숙여 시뻘건 고추를 따던 아낙네의 잔영이 아직도 이랑사이에 어른거리는데 세월은 바야흐로….
산길을 오르다보면 아담한 벌통 세 개를 볼 수 있답니다. 붕붕~~ 부지런히 꿀을 날라오던 벌들의 날갯짓으로 생동감이 넘치던 벌통에도 적막감이 찾아왔네요. 우리 붕붕이들, 엄동설한 한겨울을 잘 이겨내고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볼 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아련히 뻗은 소나뭇길입니다. 바람이 일 때마다 금빛 솔잎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바닥에는 이미 먼저 떨어진 솔잎이 수북히 쌓여 걸을 때마다 마치 이불 위를 걷는 것처럼 푹신푹신합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이 녀석들은 야생이라 추위에 매우 강해 걱정이 좀 덜 되는군요.
소나무,
눈서리 이겨내고 비 오고 이슬 내린다 해도
웃음을 보이지 않으니 초목의 군자로다.
소나무에 달이 뜨면 너는 잎 사이로 달빛을 금모래처럼 체질하고
바람이 불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구나!
산밑에 사는 부지런한 농부들은 간벌(間伐)로 베어진 소나무들을 모아 장작보일러의 땔감으로 사용합니다. 베어진 나무들에선 등고선 같은 나이테가 세월의 흔적과 함께 여물어갑니다. 사람도 열심히 살면 저 소나무의 나이테처럼 매사 둥글어질 수 있을까요?
시들어가는 가랑잎에 노란 겨울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가랑잎을 헤치고 도토리를 찾아보았습니다만, 도토리는 이미 청솔모가 다 먹어치웠더군요. 부지런한 청솔모! 하긴 그래야 긴긴 겨울 찬바람만 몰아치는 이 허허벌판에서 살아남을 겁니다. 마치 지금의 우리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