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이는 무언가에 너무 몰두하면 주변 상황에 둔감해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말 그대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그 맛에 푹 빠져 옆에 누가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도 의식하지 못한 채 타인과 그 사람의 행동에 둔감해짐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이는 공부에 몰입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최고의 공부법은 ‘집중하기’에 달려 있다는 말이 널리 통용되는지도 모른다.
잠시 옛 선현들의 공부하는 모습으로 들어가 보자. “나는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열 살이 넘었을 때는 하루 종일 방 안에 앉아 문을 나서지 않았다. 책 속의 뜻이 마음에 닿아 정신이 흡족하고 마음이 유쾌해지면 밖에서 풍악 소리가 흥겹게 울리든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든 들리지 않았다.” 이는 중국 명나라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방효유가 부모가 다그쳐서 공부한 것도 아니고 어려서부터 스스로 독서를 좋아했는데 독서에 어찌나 몰입했는지 밖에서 노랫소리가 울리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들리지 않았다니 그 집중력이 대단함을 알 수 있다.(이인호, 『책벌레의 공부』에서 인용) 이는 노랫소리나 폭풍우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독서에 집중해야 비로소 책의 맛을 볼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가슴을 울리는 또 다른 우리의 이야기도 있다. 시골 마을에 연로하신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사는데 어느 날 모친은 읍내 5일장에 나서면서 한 해 동안 온갖 정성을 들이고 뙤약볕 아래서 거두어들인 고추를 마당에 멍석을 깔고 이리저리 펼쳐놓았기에, 장으로 향하면서 “아들아, 오후에 소나기가 오면 서둘러 고추를 꼭 거두어 들여라”하고 거듭해서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아들은 공부하느라 소나기가 오는 줄도 모른 채 있다가 마당의 고추가 모두 비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불상사가 났다.
오후 늦게 장에서 돌아 온 모친은 마당에 떠내려 간 고추를 보고서 너무도 허무하여 방 안에 앉아 공부만 하던 아들을 붙잡고 마구 가슴에 주먹질을 하면서 눈물을 쏟아냈다. 아들의 무심함에 한이 맺혔던 것이다. 그런데 그해 아들은 사법고등고시에 당당히 합격하자 엄마는 그 아들을 붙들고 “이 어미가 네가 그렇게 집중해서 공부한 줄도 모르고 가슴에 못을 박았구나”하면서 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 이는 정신 집중하기가 공부에 미치는 파급력을 드러내는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일화이다. 우리는 어떻게 산만한 아이들을 공부시킬까 저마다 고민을 많이 한다. 이때는 다양한 방법으로 정신을 집중시키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아이는 정신을 집중할 수만 있으면 실력은 자연히 늘게 되어 있다. 이를 위해 적당한 사례를 들어서 주제가 무엇인지를 물어보고, 문제를 내어 풀어 보게 하고, 대답하는 말을 유심히 듣고 공부하는 내용을 기억하는지 확인하고, 생각하는 바가 올바른지 점검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산만한 마음을 바로 잡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마찬가지로 유용한 방법이다.
공부는 집중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무엇을 공부하든 그 공부하는 대상을 좋아하는 것이 우선이다. 왜냐면 좋아하면 집중하게 되고, 집중하면 실력이 향상되기 마련이니까. 산만한 사람은 공부든 독서든 잘할 수 없다. 마음이 딴 곳에 가 있는데 어찌 공부가 될 것인가? 아이들의 경우 놀고 싶은 데 어떻게 공부나 독서에 집중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아이들의 경우 놀 때는 노는 데만, 공부할 때는 공부에만 몰두하도록 습관을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어려부터의 습관 형성은 ‘세 살 적 버릇(습관)이 여든까지 간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병법에만 배수진(背水陣)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독서하고 공부할 때도 필요하다. 예컨대 책의 한 쪽을 다 읽으면 뜯어서 불사르고, 그다음 쪽을 다 읽으면 또 뜯어서 불사르는 집중하고 몰입하는 자세와 의지가 진정한 공부와 독서의 비결임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책읽기를 좋아하면 금상첨화다. 좋아하면 꿀처럼 즐길 것이고 보물처럼 소중히 여길 것이다. 독서나 공부나 모두 같은 이치라 할 수 있다. 다만 아이와 어른의 경우 책을 읽으며 얼마나 생각하는가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