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건 깨진 거야. 그리고 나라면 그걸 고치기보다는 그게 가장 멋졌던 때를 기억하고, 사는 동안 내내 그 깨진 부분을 쳐다보겠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레트가 스칼렛과 결별을 선언하며 한 이 말은 퍽 인상적이다. 비틀즈의 'Let It Be'처럼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라'는 이야기인데... 이 교훈은 요즘 별로 '금과옥조'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장르를 불문하고 리메이크가 붐이니 말이다.
그러나 리메이크 영화는 검증된 스토리가 갖는 흡인력, '스타시스템'까지 총동원하고도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원작이 남긴 깊은 인상, '재탕'이라는 숙명적 불리함 때문에? 그 것만은 아닌것 같다. 영화에는 시대 정서, 그에 맞는 배우의 이미지와 구성, 스토리가 존재한다.
리메이크는 그 중 시대, 배우, 영상만 손질하고 스토리나 정서, 구성은 원작에 얽매이기 쉽다. 원작의 편안함과 영광을 떨쳐버릴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리플리' 역시 이런 약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리플리’는 알랭 들롱의 ‘태양은 가득히’를 리메이크한 작품. '태양은 가득히'가 명작으로 꼽히는 것은 보트에 매달린 친구의 시체가 수면위로 떠오를 때, 알랭 들롱의 그 절망적인 눈빛의 잔상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뿐일까.
60년대 급격해진 빈부격차 속에서 한 젊은이의 변신 욕망과 좌절, 살인은 그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었다. 클레망 감독은 그것을 서정적 영상, 알랭 들롱의 성격 연기와 스릴러적 플롯으로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반면 '리플리'는 야망의 추락이나 인간의 악마적 이중성을 다룬 스릴러라기보다는 “나는 왜 네가 아닐까”라고 끊임없이 되묻는 가련한 남자의 내면을 그린 심리 드라마에 가깝다. 40년 세월이 영화의 주제를 '사회적 의식'에서 '개인적 심리'로 바꿔 놓은 것이다.
그러나 '리플리'는 후반으로 가면서 원작의 '스릴러'를 답습하느라 심리드라마의 매력을 잃어간다. 우발적 연쇄살인 후 선실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리플리의 모습처럼.... 초라하지만 떨쳐버릴 수 없는 과거와, 화려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미래 사이에서 삶의 통제력을 잃어버린 자의 미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