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 작품을 한번 볼까요? 뭐가 보여요?” “사람이다!” “그런데 슬퍼하는 것 같아요.” “그래요, 이 작품의 작가는 6.25 전쟁 때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대요. 그래서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우울해 보이는 사람을 그렸다고 해요. 그런데 이 사람은 몸이 여러 조각으로 나눠져서 각각 다른 색으로 칠해져 있죠? 큐비즘은 이렇게 여러 방향에서 본 서로 다른 모양들을 조각조각 한번에 표현한 것이랍니다.”
‘아시아 큐비즘’전이 열리는 덕수궁미술관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초등학생들의 눈빛이 제법 진지하다.
덕수궁미술관은 지난 10일부터 13일까지 나흘간 지역아동센터 공부방 어린이 160여명을 대상으로 ‘겨울방학, 미술과 놀자’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11일 부천의 오순도순마을공부방 학생들을 인솔하고 온 남승희 씨는 “문화체험활동이라고 해봐야 놀이공원을 찾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미술관 관람은 처음이라 걱정을 많이 했다”면서 “정적인 공간이고 활동에 제약도 많은데 생각보다 아이들이 잘 따라다니는 것 같아 다행”이라며 웃어보였다.
2층 전시실 관람까지 모두 끝나자 강사는 아이들을 이끌고 작은 체험실로 향했다. “지금까지 큐비즘 작품들을 쭉 봤잖아요. 이제 여러분이 직접 큐비즘 작가가 돼서 그림을 그려보는 거에요.” 고학년은 준비된 엽서에 직접 그림을 그리고 저학년들은 스케치된 작품 위에 색칠을 하기 시작했다. 색연필을 손에 쥔 모습은 여느 화가 못지않게 진지하다. “우와, 슬기 친구는 빨간 색을 많아 썼네요? 보세요, 같은 공작 그림인데도 색깔에 따라 느낌이 정말 다르죠?”
소외계층을 위한 덕수궁미술관의 방학 프로그램은 작년 여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미술관 관계자는 “여름방학 때 공부방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전시 체험프로그램을 선보였는데 의외로 학교에서 미술 자체를 접해보지 못한 학생들도 꽤 많았다”면서 “이런 기회를 마련해줘야 아이들이 다음에 한번이라도 미술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덕수궁미술관은 소외계층을 위한 프로그램 외에 이달 말까지 초등학생 관람객을 위한 ‘현장체험학습 보고서 만들기’도 운영한다. ‘20세기로의 여행: 피카소에서 백남준으로’ 전시회 관람객에게 제공된 초등학생용 현장체험학습 보고서와 학부모용 지침서는 시청 쪽까지 줄을 늘어섰을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고. 결국 미술관은 당초 제작된 5천부 외에 추가로 2천부를 더 제작해야 했다. 이번 겨울에도 방학을 맞아 자녀와 함께 현장체험학습을 하려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
체험학습 보고서에는 전시를 보고 느낀 점, 전시장의 분위기와 관람객의 태도 평가 외에도 ‘배경과 정물을 가로질러 곡선으로 나눈 이유,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색채와 풍물’ 등 생각할 거리를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다. 학부모 지침서는 ‘자녀들에게 큐비즘은 이렇게 설명해주세요’, 체험보고서 지침요령 등이 함께 들어있어 자녀지도로 안성맞춤이다. 인터넷에서 프로그램 안내를 보고 미술관을 찾았다는 한 학부모는 “부모들도 공부할 수 있고 아이들을 지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덕수궁미술관 이용희 씨는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보니 이런 프로그램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자녀들의 올바른 전시 관람과 체험학습을 지도할 수 있어 학부모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