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경영의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사학의 반발과 정치권의 첨예한 대립을 낳은 개정 사립학교법의 위헌 여부가 헌법재판소의 공개 심판에 올랐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14일 오후 대심판정에서 작년 말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민주노동당의 공조 속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사립학교법(사학법) 헌법소원 사건의 첫 공개변론을 열었다.
재판부는 작년 말 우암학원이 청구한 사건(주심 김종대 재판관)과 조용기 우암학원 설립자가 올해 3월 청구한 사건(주심 김희옥 재판관) 등 2건의 헌법소원 사건을 이날 병합했고, 병합 사건의 주심은 김종대 재판관이 맡았다.
정부와 사학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조항은 ▲학교운영위원회와 대학평의원회에서 2배수 추천한 인사 중 이사 정수의 4분의 1 이상을 선임하도록 한 개방형 이사제(14조3항) ▲선임 요건을 완화하고 임기 제한을 없앤 임시이사제도(25조) 등이다.
학교법인 이사장의 배우자, 직계존속 및 직계비속과 그 배우자의 학교장 임명을 제한하고 있는 54조3의 3항도 쟁점이다.
◇ "획일적인 관급형 공교육이 판치게 돼" = 개정 사학법을 완강하게 반대하는 한나라당은 전교조가 학운위 등에서 조직력을 발휘해 개방형 이사의 대부분을 추천함으로써 결국 사학을 장악해 학생들에게 좌경이념을 교육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청구인측 대리인인 이석연 변호사는 "개방형 이사제는 사학의 건학 이념을 부정하면서 모든 사립학교 법인을 공립화, 사회화를 꾀하는 것으로 헌법의 기본 토대인 자유민주주의와 사적 자치, 자유시장경제를 흔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학은 설립자의 사유재산도 아니며 그렇다고 공공재산도 아니다. 사적자치에 입각해 재단법인이 국가 간섭 없이 운영하는 게 본질이다. 이는 사학이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건학이념에 입각한 사학의 다양성과 독자성이 상실되면 특정 이데올로기와 특정 지배세력에 의한 획일적 관급형 공교육이 판을 치게된다. 코미디적인 법에 대해 헌재가 과감하게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헌 변호사는 "사학 설립 목적과 전혀 관계없는 외부 인사가 사학 의사와 무관하게 학교 운영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한 타율적 제도는 경영권과 본질적 자유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학으로부터 이미 학생 선발권과 등록금 책정권을 이미 빼앗은 국가가 최근에는 자립형 사립고 설립마저 제한하고 있는데 공공성을 내세워 사학의 권리를 빼앗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 "사학 운영의 민주ㆍ투명성 제고하려는 것" = 반면 여당과 정부는 개정 사학법이 사학 운영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높여 교육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국내 사립중ㆍ고교 운영비의 98%가 국고 지원금과 학생 등록금으로 충당되고 있고 재단 전입금은 2%에 그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사학은 사실상 '공공재'에 해당한다는 게 정부 주장의 근거다.
피청구인인 교육인적자원부의 대리인인 가재환 변호사는 "청구인들은 우리 사회에 이데올로기 편향성이 나타나는 것을 등에 업고 이데올로기적 단죄를 유도함으로써 사학법 개정 이유의 본질을 감추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는 국회가 사학법을 개정한 이유와 개정 사학법 시행 결과를 논의해야 한다"며 "학부모 부담과 국가 재정이 사학 운영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공공성 확보와 민주성, 투명성 제고라는 헌법 이념을 달성하려면 사학도 최소한의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곽태철 변호사는 "사학이 비록 개인 재산으로 설립됐기 때문에 운영의 자율을 향유한다고 해도 교육의 공공성과 헌법이 부여한 국가의 교육 형성권은 부인할 수 없다"며 "사학의 재산권 행사를 엄격하게 규정한 조항을 이전에 헌재가 합헌으로 판단한 것도 공익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곽 변호사는 "사학의 궁극 이념은 학생의 학습권 보장이고 이는 튼튼한 재정과 뛰어난 자질을 갖춘 교사를 임용하는 것으로 달성된다. 개정 사학법은 재정이 올바르게 쓰이고, 교원 임용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 헌법소원 심리 어떻게 진행되나 = 통상 공개변론이 열리고 1∼2개월 뒤에 선고가 이뤄진 점에 비춰 보면 한 차례 더 공개 변론이 열린 후인 내년 2~3월에는 사학법 위헌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언론의 자유 침해 여부를 놓고 사회적 논란이 빚어졌던 신문법과 언론중재법 선고도 작년 4월 첫 공개변론 이후 2개월 만에 나왔다.
그러나 사회적 갈등을 불러올 만큼 중요한 사건을 헌재 소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재판관 8명이 처리하기에는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소장 임명이 늦어지면 선고 시기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사학법 재개정 움직임도 변수다.
핵심 쟁점인 개방형 이사제도 등이 사학이 원하는 쪽으로 여야 합의에 따라 재개정되면, 소송은 '각하' 형식으로 마무리될 수 있지만 재개정 법안을 놓고 다시 사학이 헌법소원을 청구하면 병합사건으로 심리가 진행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