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티즘’과 ‘문학과 악’ 등의 책이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그 이름이 알려진 조르주 바타이유(Georges Bataille, 1897~1962)는 철학·경제학·종교사·생물학·민족학·문학·미술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무서우리만치 예리한 통찰을 보여준 ‘금기’와 ‘위반’의 작가라 할 수 있다. 헤겔과 니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근대적 합리주의와 생산 중심의 세계를 끊임없이 비판함으로써 독자적 사상체계를 구축한 그는 특히 데리다와 들뢰즈 그리고 푸코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타이유의 글쓰기에는 죽음과 에로티즘이라는 두 개의 핵심적인 주제가 종종 나타나는데, 그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의 공포스러운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강박관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아버지가 소변을 볼 때면 눈동자가 없는 하얀 동공이 커다랗게 벌어지곤 했는데, 그 이미지가 상상적 전이(轉移)의 기초로 작용했다고 바타이유는 말한다.
1928년 로드 오슈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그의 최초의 소설 ‘눈 이야기’에서는 하얀 동공이 달걀의 흰 색과 황소의 고환으로 변형되고, 다시 외설스런 오줌싸기와 죽음, 특히 눈을 찔려 죽은 투우사 그라네로의 죽음으로 변형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바타이유에 있어서 공포가 항상 에로티즘과 죽음에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금기에 대한 위배 또는 위반을 극한에까지 추구해 들어간 바타이유가 ‘풀밭 위의 점심식사’(1863‧사진)와 ‘올랭피아’(1863)의 스캔들로 당대의 화단을 발칵 뒤집어 놓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론을 쓴 것은 그 자체로서 주목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 바타이유는 마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마네의 그림 그리는 힘은 어떤 강렬한 열정에 비교될 수 있으면서도 마치 초월적인 무관심에서 움트고 있는 것 같다. 라파엘로와 티치아노가 기획한 신화적인 세계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이런 절대의 힘은 파괴본능을 내포하고 있다. 마네는 비로소 그의 재능으로 인해 자유의 침묵에 이르렀다고 보아도 좋다. 자유의 침묵은 동시에 완전한 파괴다.”
이렇듯 바타이유는 마네의 그림을 ‘라파엘로와 티치아노가 기획한 신화적인 세계와는 정반대인’, ‘익숙한 것들에 대한 완전한 파괴’를 통해 ‘자유의 침묵’에 이른 순수한 놀이의 표현으로 본다. 그는 ‘주제 파괴’의 영웅, 위대한 고전미술과 현대성 사이에서 천재적인 중개역을 맡은 창조적 ‘전복자’의 전형을 마네에게서 발견한다. 이것은 또한 회화의 세계에 있어 주제의 의미작용 보다는 표현 자체의 자립성을 중시하는 바타이유 자신의 예술관을 표명한 것이기도 하다. 시인·인하대 프랑스문화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