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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난이도 일정하게 성취도는 등급제로

영국의 일제고사 운영을 통해본 시사점

학부모 알권리 충족위해, 20년 전 도입
개별 학력수준 증명은 자격증 형태로
“정책 성패 관건은 일정한 수준 유지”


영국 정부가 1988년 일제고사를 도입할 당시, 그 목적은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향상이었다. 물론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 정부의 입장으로서는 정확한 일제고사의 결과가 없으면 효과적이고 정밀한 교육정책을 만들어내는데 한계가 많다는 점도 그 목적에 포함됐다.

당시 영국 정부는 일제고사를 도입하고자 캠페인을 할 때. 위와 같은 정부의 필요성보다는 학부모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까지 영국의 교육시스템에서 자신의 자녀가 어느 정도의 학력수준에 도달해 있는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시험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시험 뿐이었다. 따라서 부모로서는 졸업시험의 결과가 나와 버렸을 때는 어떻게 손을 써 보고자 해도 이미 늦은 상태이며, 가능하면, 좀 더 일찍 알고 싶어 했다. 이러한 학부모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정부의 강조는 한국과 영국, 양국이 동일하다.



‘효과적이고 정밀한 교육정책 수립’ 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영국의 일제고사 시스템은 다음의 세가지 원칙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시험의 수준(난이도)은 매년 일정해야 하며 ▲학력의 증명은 졸업장이나 성적표가 아닌 ‘학력 자격증’ 제도로 하고 ▲학력은 등급제로 표시한다는 것이다.

먼저 매년 난이도 조정으로 시험의 수준이 변하게 되면, 학생들의 학력이 과거에 비해 어떻게 변했는지 가늠하는 종단적 연구가 불가능해진다. 가령 어떤 교육정책의 효과를 검증하고자 해도 시험 난이도를 조절해 버리면 그 정책 효과의 시간적 비교 검증이 불가능해진다.

정당간의 정책 효과성을 비교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의 집권당과 현재의 집권당 교육정책을 비교할 주요한 근거도 마련하지 못하는 것이다. 영국에서 정치 정당 간 교육정책을 비판할 때는 반드시 이러한 학력의 비교치가 등장한다. “과거 보수당 정권 시절에 비해 현재 우리 노동당의 교육정책에 의해 학생들의 성취도가 이만큼 향상되었다”라든가, 집권당 교육정책을 비판하는 보수당도 “노동당이 실시한 자사고 확대정책의 결과, 전국적으로 학생들의 학력이 향상되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자사고 설립에 퍼 부은 공공재원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를 분리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의미도 없었다”라는 식의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위와 같이 교육 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토론은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학력의 변화를 측정한 신뢰성 있는 종단적 자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학력 수준의 증명은 기술이나 기능 자격증처럼 ‘학력 자격증’ 제도로 정착되어야 한다. 만약 전국의 모든 학교가 평준화 되어 지역 간, 또는, 학교 간 편차치가 적다면, 학교가 발급하는 졸업장 또는 성적표는 전국적 어디에서든, 대학이든, 노동시장이든, 그것이 학력을 가늠할 수 있는 증명서가 된다. 하지만, 지역 간, 학교 간 편차가 벌어져 버린다면 개별 학교의 졸업장이나 성적표는 그 유효성이 없어진다. 현재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토플과 토익같은 영어시험이 지원자들을 변별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쓰이는 이유는 학력을 변별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대학이나 노동시장에서는 ‘무슨 과목 (영역) 학력 자격증 소지자’와 같은 형태로 구인 또는 모집 광고에 명시된다. ‘고졸자’ 또는 ‘대졸자’ 라는 문구는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영국의 관점에서 본다면, 막대한 교육비와 평가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사용자가 신뢰할 수 있는 자국의 학력 검증 자격증 발급 시스템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것은 아주 기이한 현상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고등 교육 수학 능력 평가 시험’의 정착을 위해 등급제로 표시돼야 한다. 현재 ‘수능’이라는 시험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대학에서 제공하는 강의를 소화할 수 있는 학력 수준에 도달해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다시 말해, 지원자의 수준이 자신의 대학에서 제공하는 강의를 소화할 수 있는 수준(무슨 과목 몇 등급)에 도달하면 입학허가를 하겠다는 취지이며, 따라서 학생들의 학습 목표는 자신이 진학하고 싶은 대학의 학과가 요구하는 ‘특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대학 입시제도는 ‘대학이 취하는 편이함’과 ‘수험생이 겪는 부담’을 비교할 때 수험생의 입장에서 불공평하다. 대학은 ‘이 수준에 도달하면 받아 주겠다’고 명시를 하고, 학생은 ‘그 수준’에 도달하면 된다. 이것은 공평하다. 하지만, ‘정원 채워지는 것 봐 가면서’ 라는 것이 현재 대학의 자세이다. 대학이 말하는 입학 수준이란, 게임을 시작하기 전이 아닌 게임이 끝난 뒤에 ‘커트라인이 얼마였다’라고 밝힌다. 이것은 지원자 입장에서는 아주 불공평하다.

영국의 대학은 사전에 ‘지원자 학력 수준’을 공지 한다. 그리고 지원자가 정원을 초과하더라도 대학은 주어진 예산 안에서 초과분의 학생을 수용을 해야 한다. 그것은 당해 수험생들의 학력 수준을 예측하지 못한 대학의 책임이다. 한국의 대학은 이러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학생의 학력 수준에 상관없이, 정원에서 지원자를 자른다. 이렇게 되면 수험생은 대학이 말하는 ‘수학 능력’이란 어디를 말하는 지 알 수가 없게 된다.

일제고사 정책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관건은 시험의 ‘일정한 수준 유지’다. 매년 ‘난이도’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매년 일제고사를 치르는 학생들과 준비하는 교사들, 평가에 얽힌 수많은 연구자들의 시간과 노력 등 그리고 거액의 비용을 지불하고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영국이 얻는 일제고사의 효과에 비해, 아주 미미해 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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