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35년을 산 한국 여성. 건축사를 전공한 공학박사로, 물리학 박사인 독일인 남편과 두 아이를 가진 그녀는 다음과 같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아이가 세 살까지는 직접 키우겠다"며 남편과 함께 좋은 직장 그만뒀습니다. 복직한 뒤에도 출세보다는 가족을 우위에 두고 점심도 집에 와 먹는 남편을 두었습니다. 자동차의 나라 독일에서 자전거로 거리를 누비고, 난방기 대신 따뜻한 물주머니를 품고 긴긴 겨울을 납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면서 생선을 먹는 것은 정작 생선에 의지해온 사람들의 먹을거리를 빼앗는 것 아니냐며 식탁에서 고등어까지 추방시킨 그녀의 삶을 당신은 “웬 궁상”이라고 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인생에서 돈 대신 시간을 선택했을 뿐이며, 나 하나 편하자고 환경에 민폐를 끼칠 수는 없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고등어를 금하노라’(푸른숲)는 이런 그녀의 가족이 추구해온 '품위 있는 삶'의 기록입니다.
남의 시선에 이렇게 둔감한 그녀가 자식 교육이라고 예외를 두었을 리가 있을까요. 그녀는 '놀이가 최고의 학습'이라는 믿음으로 아이들의 성적은 묻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방목(放牧)'에 가깝지만, 난독증까지 있던 아이들은 그녀의 믿음에 부응해 상위 25%만 갈 수 있다는 김나지움을 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그건 독일이니까 가능한 얘기 아냐”라며 그렇게 자식을 키우지 못하는 스스로를 위안하려고 하는 순간, 그녀는 이렇게 철퇴를 날립니다. “독일도 한국과 비슷하다고. 학교에 들어가면 과외부터 붙이고, 성적 안 된다 싶으면 영국 사립학교에 보내는 부모 많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녀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부모의 도움으로 잘 사는 게 아니라, 부모의 도움 없이 잘 사는 것”이라며 “자기 템포로 기분 좋게 달리는 말에게 꼭 제일 앞에서 달려야 한다고 채찍질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합니다.
소명의식이나 공명심에서가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인인데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지 않을 핑계가 없다”고 말하는 데야 뭐라 더 할 말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공부에 취미가 없는 사람이 대학에 다니는 것만큼 실패한 인생도 없고, 남들 다 한다고 어설프게 진학하는 것보다는 기술 하나 똑 부러지게 배우는 것이 낫다”는 ‘마이스터’ 예찬론을 펴는 씩씩한 그녀의 일성(一聲)에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남의 기준에 휩쓸리며 대한민국의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어느새 ‘특목고’ 뉴스에 귀를 쫑긋 세우고 맙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정녕 ‘그녀’ 같은 부모가 필요할 텐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