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지도층'이란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당장 얼굴부터 찌푸려지시나요. 잊을 만하면 한번씩 떠들썩하게 언론을 장식하는 우리네 사회지도층은 갖가지 범죄와 파렴치 행위를 선도하는 음지(陰地)의 리더라는 인식이 강한 것이 사실이지요.
하지만 ‘지도층’의 미덕은 그들이 가진 부(富)를, 정신 자산을, 인품과 양식(良識)을 앞장서 나누고 베풀고 보듬는 데 있겠지요. 진심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다하는 사람, 여기 그런 씨앗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김충용(60) 청기와예식장회장은 서울 성서초등교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이다. 물론 모교도 아니고 손자가 재학중인 것도 아니다. 단지 지역주민 자격으로 참여해 6년째 봉사하고 있다.
김 회장은 "그냥 돈 쓰는 자리"라며 웃지만 운영위원장이라는 직함이 정확하게 돈, 시간, 관심을 모두 쏟아야 하는 자리라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김 회장은 96년 학운위에 참여하면서 학교담장 벽화 그리기 작업부터 시작했다. 페인트를 사고 학부모들과 함께 한여름 땡볕아래서 우중충한 회색 담벼락에 동화를 그렸다. 학교가 지역주민의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주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테니스장도 만들었다.
성서초등교가 도농간 체험학습 시범교로 지정되자 도서벽지 학교들과 자매결연 사업에도 정성을 쏟았다. 전남 신안 하의초등교(김대중 대통령 모교)를 방문, 결연비를 세우고 6회에 걸쳐 도농간 체험학습을 실시하도록 후원했다. 하의초 어린이들이 서울에 왔을 땐 학생, 학부모 200여 명의 식사일체를 제공하기도 했다.
강화 선원초, 전남 진도 창동초, 충북 진천 백곡초, 전남 진도 고성초, 전남 해남 화원초, 제주 제주동초 등 7개 학교와도 자매결연을 맺었다. 돈, 시간, 관심 중 어느 하나가 없어도 얻을 수 없는 성과였다.
강당 없는 아이들이 학예발표회나 공연 등을 할 수 있도록 2000만원을 들여 조회대 공사도 했다. 교단과 화단 사이의 다리가 눈, 비에 썩어 들어가자 철재로 다리 보수 공사도 실시했다. 아이들은 이 다리를 '우정의 다리' '사랑의 다리'라고 부른다.
김 회장은 마포에서 10대째, 300년이 넘게 살고 있다. 그야말로 마포 '원주민'인 그는 지역주민을 위한 봉사에도 '돈'을 아끼지 않는다. 노인정을 운영하는 것을 비롯 매년 지역노인을 위한 경로잔치, 환경미화원을 위한 위로 잔치도 연다. 90년부터는 무료합동결혼식도 치러주고 있으며 모교인 인창고교에는 장학재단도 설립했다. 하지만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유치원 설립, 초등학생 예절교육원과 노인을 위한 실버터운 건립 등 김 회장의 머리 속엔 지역주민을 위한 구상이 가득 차 있다.
"마포는 제 뿌리의 원천입니다. 이 땅이 제게 베풀어 준 것이 많은 만큼 제가 이 지역에 봉사하며 사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빚 갚는 심정으로, 그렇게 자처하고 나서면 아까울 것도, 힘들 것도 없다는 게 김 회장의 '봉사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