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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시네마편지> 진주만

1. '진주만'에 대한 기억

'미국과 영국을 쳐라'/하옵신 대조(大詔)를 내리시다/12월 8일 해뜰 때/빛나는 쇼와 16년/하와이 진주만에/적악을 때리는 황군의 첫 벽력/웨스트버지니아와 오클라호마/태평양 미함대 부서지다/이어서 치는 남양(南洋)의 해공육/프린스오브웨일즈 영함대 기함/앵글로의 죄악과 운명을 안고/구안탄 바다 깊이 스러져 버리다/아시아의 성역은 원래/천손(天孫)민족이 번영할 기업/앵글로의 발에 더럽힌 지 2백년/우리 임금 이제 광복을 선하시다

香山光郞이란 '일본신민'이 1942년 1월에 쓴 '진주만' 찬양 시입니다. 香山光郞은 1945년 이후 '춘원 이광수'라 불렸던 사람입니다. 松村紘一도 '기명하라, 12월 8일'이란 진주만 기습 찬가를 지었습니다. 그는 또 누구냐고요. '불놀이'란 시로 잘 알려진 '주요한'이랍니다. '사슴'의 여류시인 노천명도 진주만에서 전사한 일본군인 9명(소위 9군신)을 찬양한 '흰 비둘기를 날려라'를 쓰며 당시 조선인들에게 성스러운 황군의 전장으로 어서 나가라고 선동했었지요.

2. 영화 '진주만'

'진주만'을 소재로 한 영화라면 1970년 미·일합작으로 만들어진 '도라 도라 도라'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미국의 20세기 폭스사와 리처드 플레이셔 감독, 일본의 도시오와 긴지 두 젊은 감독이 30년 전의 쓰라린 기억을 '중립적 시선으로, 양국 화해를 목적으로' 만든 결과가 이 영화였습니다. 그로부터 30년 후 가장 미국적 영화사 디즈니에 의해 탄생한 '진주만'은 일본의 침략에 대한 미국의 영웅적 시련 극복기-존 보이드가 분한 루즈벨트 대통령부터 '시련을 극복한 영웅'으로 등장하지 않습니까-로 단일화되었습니다. 30년 전의 '일본측 입장' 대신 '삼각관계와 죽음을 나누는 우정'이 그 시간을 땜질하면서 말이지요.

30년, 30년은 한 세대가 지나는 기간이지요. 구세대가 신세대에 자신들과 그 이전의 기억들을 재생시켜 물려주어야 하는 시점이고요. 그래서 미국은 영화를 통해 30년마다 '리멤버 펄 하버'를 부르짖는 모양입니다. 태평양전쟁이 정의의 전쟁이고 침략에 대한 방어전쟁이며 음흉한 황인종에 대한 경고이자 위기에 일치 단결해 미국에 도전하는 세력을 응징하는 게 자신들의 전통임을 일깨우기 위해서....

어쩌면 이들은 30년 후, 아니면 진주만 기습 100주년이 되는 2041년에 다시 대대적 홍보를 하며 '진주만'을 영화로 만들지도 모릅니다. 그때쯤이면 우리도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문디자슥, 고마 해라. 많이 써 뭇다 아이가."

3. 다음 세대에게 '진주만'은....
하나의 사실에 대한 기억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오 수정'처럼 두 남녀의 사랑에 대한 기억도 서로 다른데, 하물며 수많은 사람의 삶에 충격과 상처를 준 전쟁에 대해선 더욱 그렇겠지요. '진주만'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겠지요. 당시 미군이나 민간인들의 기억도 영화 '진주만'의 세 연인과는 다르겠지요. 모든 걸 빼앗긴 채 수용소로 가야했던 당시 미국에 살았던 일본인들 역시 이 영화와는 다른 기억을 갖고 있겠지요. 또 미국의 본토폭격에 시달렸던 일본인들로선 원폭의 처참한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고요.

그럼 우리들에게 '진주만'은 무엇일까요. 단순하게 남의 일이자 기억 저편의 역사일 뿐일까요. 우리가 훌륭한 작가로 알고 있는 이들이 그 당시 젊은 영혼들을 '성스러운 황군의 전장'에 몰아넣었던 사람들인 우리는 '진주만'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우리에겐 '유치한 애국주의' 라며 비웃을 30년 주기의 '진주만' 기억도 없습니다. 아니 아예 그런 기억의 정리조차도 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진주만'의 기억을 은폐하고 미화하기 바빴으니까요. 우리가 앞 세대에게 물려받은 '진주만'의 기억은 무엇입니까. 이젠 우리도 다음 세대에게 '진주만'에 대해 어떤 기억을 물려주어야 할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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