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국어국문학과의 강현화(47·여) 교수는 올 봄학기에 자신이 맡은 대학원 과목의 수강 인원표를 보다 깜짝 놀랐다.
많아도 10명 안팎인 대학원 과목 하나에 무려 58명이 몰렸던 것.
이 수업은 한국어의 구조를 다른 외국어와 비교해 분석하는 '대조언어학 연구'로, 수강생은 모두 태국과 미얀마, 우즈베키스탄, 미국 등 외국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강 교수는 "대학원 수업하며 사람이 많아 분반(分班)한 것은 처음이었다. 인종과 국적이 너무 다양해 강의실에 가면 눈이 어지러울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다.
국어국문학과와 국어교육과 대학원에 외국인이 한국 학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 일부 세부 전공에서는 '토종 학생보다 더 많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
이 같은 현상은 한국어가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서 인기를 끌면서 국어 지식과 교습법을 배워 우리말 전문가로 일하려는 사람이 많이 늘어난 덕분으로 풀이된다.
8일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서울지역 6개교의 국어계열 대학원의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해당 학교의 석·박사 과정생 749명 중 외국인은 237명(약 31.6%)에 달한다.
특히 서울대와 한양대 국어교육과 대학원은 재학생 78명과 33명 중 외국 출신이 각각 33명과 14명으로 비율이 40%를 넘었다.
199명이 다니는 연세대 국문과 석·박사 과정에도 외국인이 76명(38.2%)이다.
학계에 따르면 이들은 대개 세부 전공으로 국어학이나 한국어 교육학을 택하며, 학위 취득 후에는 고국 대학의 한국학과 교수나 어학 강사, 무역 전문가 등으로 활동한다.
국적은 예전 중국과 일본 일색이었던 것과 달리 베트남, 인도네시아, 독립국가연합(CIS) 등으로 다변화하는 추세다.
성균관대의 권인한(48·국어학) 교수는 "한국어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며 실리를 쫓아 언어를 깊게 배우려는 수요가 크게 늘었다"며 "요즘은 고전문학 등 더 학술적인 분야를 택하는 외국인도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부가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리려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스터디 코리아 프로젝트' 등의 정책으로 유학생 지원을 늘린 것도 이런 현상의 원인이 됐다.
국립국제교육원에 따르면 관련 지원제 중 하나인 정부초청 장학생 프로그램으로 매년 입국하는 국어계열 전공자의 수는 2000년 7명에서 2006년 20명, 2008년 38명으로 9년 사이 다섯 배 이상 증가했다.
외국 학생이 제일 많이 몰리는 세부 전공인 한국어교육학(한국어를 외국인에게 가르치는 이론을 다루는 분야)의 비중도 커졌다.
국어학의 일종으로 여겨지던 과거와 달리 2003년부터 한국연구재단에서 독자적인 학문 지위를 인정받았고, 관련 학위·학술지 논문도 2000년 77편에서 2003년 103편, 2008년 223편으로 수가 껑충 뛰었다.
학계 전문가들은 이처럼 외국인 학생이 늘어나는 경향이 전반적인 국어 연구에 도움이 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어를 외국인에게 가르칠 수 있는 '국제어'로 보면서 예전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의미와 문법구조 등에 대해 더 다양한 분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희대의 박동호(50·한국어교육학) 교수는 "예컨대 이유를 뜻하는 말인 '∼니까'와 '∼아서'의 미묘한 차이를 국외에 어떻게 설명할지 등을 고민하며 연구의 범위가 넓어지는 효과가 생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