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지난달 19일 디지털 교과서 ‘아이북2’(iBooks2)를 선보이고 디지털 교과서사업에 진출하기로 했다. 무료로 제공되는 ‘아이북2’는 디지털로 제작된 교과서를 볼 수 있게 하는 서비스로 도표와 영상, 오디오, 애니메이션 등을 구현시킬 수 있어 학습에 유용한 쌍방향 디지털 교과서 플랫폼이다.
또한 애플은 매킨토시 컴퓨터를 이용해 교사들이 자체 교재를 만들 수 있는 도구인 ‘아이북 아서’(iBooks Auther)와 교수들이 온라인 강의 코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도 함께 공개했다. 게다가 미국 내 고교 교과서의 90%를 14.99달러(보통 교과서 가격 약 75달러)에 공급하기로 하면서 론칭 3일 만에 35만권의 디지털 교과서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아이북2’ 공개로 각계에서는 과연 애플이 교과서 시장 진출로 교육 혁신을 일으킬 수 있을지, 더 많은 학생들에게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구글이 정보화 시대에 지식을 민주화시켰다는 평을 얻고 있듯이 애플의 ‘아이북’도 교육계에서 비슷한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왜냐하면 사용자들이 다양한 비디오, 음악, 그래픽이나 문서를 이용해 새로운 교육 자료를 쉽게 만들고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온라인 매거진 ‘슬레이트(slate)’는 "애플이 교과서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속내가 기술 발전이 교사와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신념보다는 순이익을 챙기려는 데 있다"고 평가절하 했다. 애플은 ‘아이북2’가 교과서의 혁신과 교육의 발전을 이끌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들이 80억만 달러 규모의 미국 초․중․고 교과서 산업에 한 몫을 차지할 심산으로 뛰어든 것인지, 교육 혁신에 대한 비전을 갖고 뛰어든 것인지는 앞으로 아이북이 가져오는 변화를 좀 더 신중하게 살펴보며 판단할 필요가 있다.
교육은 상호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아이북으로 배움에 대한 즐거움을 더할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 학업성취도가 개선된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미국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질 높은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좋은 교사는 학생들이 배움의 즐거움을 체험하도록 이끌지만 그렇지 못한 교사는 아무리 디지털교과서를 동원해도 학생의 발전을 이끌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플이 디지털 교과서 산업에 진출해 실현하고자 하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의문을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몇 가지를 짚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2010년 1900만 명의 미국 대학생이 지출한 교과서 비용은 45억만 달러이며 1986년부터 2010년까지 교과서 가격은 186%나 증가했다. 지금으로서는 초과부담으로 여겨지는 교과서 가격을 저렴한 14.99달러에 제공해 부담을 덜어준다고 보일 수도 있지만 애플이 제공하는 교과서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500달러나 되는 아이패드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결국 애플은 자신들이 초․중․고등교육(K-12 education)의 질을 상당 수준 개선시킬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만큼, 학교와 교육자, 학생들이 애플이 꿈꾸는 생태계에 속하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정부가 학생 한 명당 지출하고 있는 교육비용은 평균 1만2000달러로, 이 정도 예산으로는 모든 공립학교 학생에게 아이패드를 제공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만약 그 비용을 학부모가 부담하게 한다면 많은 전문가들이 주장하고 있듯이 애플의 디지털 교과서는 소위 ‘있는 집’ 아이들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산이 풍부한 학교와 가정에서는 더욱 다양한 배움의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애플 생태계에서 살아남기엔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저소득층 가정의 학생들은 이와 같은 교육적 혜택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아이북2’로 기대되는 교육환경의 변화가 빈부격차를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악화시킬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