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는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운영으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학생의 수업 부담 증가 등의 문제를 효율적인 교과 운영과 선택형 대학입시 체제와의 연계를 통해 극복하고 있다.
핀란드 고교 교육과정 운영의 주요 원칙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인문·자연과학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핵심 교육과정은 필수 과정으로 지정해 모든 학생이 다양한 분야의 기본 지식을 두루 섭렵하도록 한다. 둘째, 수학과 외국어는 지원 대학과 학과에서 필요한 수준까지 학습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yliopilastutkinto)에서 상급과 초급으로 등급을 나눈다. 셋째, 모국어는 전공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수능에서 등급을 나누지 않는다. 넷째, 학생이 대학의 학과별 시험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각 과목에 심화 과정을 개설한다. 마지막으로 학교는 지역 특성과 지역 대학의 특성을 고려해 국가가 규정한 심화 과정에 더해 추가로 수업을 개설할 수 있다.
학기는 봄·가을로 구분돼 있지만 실제 수업은 7주씩 끊어 학기당 3회의 단위 학기제로 운영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6주 동안 수업에 참여하고 마지막 주에는 시험을 쳐서 한 과정을 이수한다. 과정 당 수업시간과 과제물은 과목에 따라 변동이 있지만 대체로 30~35시간으로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단위 학기에 5~7개 수업을 이수한다. 수업에서 다루는 내용과 선수 과정은 수업계획에 명시돼 있다.
핀란드 고교에서 수준별 수업이 이뤄진다고 알려져 있기도 한데, 엄격한 의미에서는 수준별 수업이 아니라 단계별 수업이다. 필수 과정을 이수한 후 각자 지원할 대학의 학과의 특성에 맞는 심화 과정을 수강할 수 있는 것이다. 나머지 선택과목에서는 학생이 스스로 원하는 과정의 수업에 참여한다.
입시에서는 고교내신, 수능 그리고 대학별 본고사의 성적이 반영된다. 내신은 필수 과정과 학생이 선택한 나머지 과정의 성적이 반영된다. 본고사 입시문제의 출제와 관리는 대학의 각 학과에서 전담한다. 대학은 시험 시행 1년 전에 시험용서적(tenttikirja)을 공개해 학생들이 사전에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4~5개 대학이 동일한 서적을 선정하고 공동으로 출제하기도 한다.
입시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수능은 모국어와 3개의 선택과목으로 구성돼 있다. 선택과목은 제 2공용어(스웨덴어 또는 핀란드어), 외국어, 수학 그리고 기타 일반과목 중에서 3과목을 선택해야 한다. 일반과목은 물리, 화학, 생물학, 사회, 역사, 종교, 심리학, 철학, 가치관, 보건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문·이과 통합 운영을 위해 등급별로 시험을 치르는 과목은 수학, 외국어와 제2공용어다. 수학과 외국어는 상급과 초급으로, 제 2공용어는 상급과 중급으로 분리돼 있다. 모국어와 기타 과목은 등급이 나뉘어져 있지 않다. 지원자는 반드시 최소한 하나의 시험에서 상급 수준의 시험에 응시해야 한다.
계열은 분리돼 있지 않지만 선택과목에서는 학생들이 희망하는 대학의 학과 특성을 염두에 두고 필요한 과목을 이수한다. 예를 들면 이공계를 지원할 학생은 수학 상급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 장기수학을 이수하고, 외국어나 제2공용어는 초급 또는 중급 시험에 대비할 수 있다. 상급시험을 위한 장기수학 과정은 초급의 단기수학보다 4개의 필수 과정이 더 있고 수준이 높다. 인문계에 지원하는 학생은 상대적으로 중요한 외국어의 상급시험에 대비한 수업을 이수하고 단기수학을 선택한다. 전공에서 수학이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단기수학의 필수 과정만 이수하고 수능에서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모국어, 수학, 제2공용어는 필수보다 심화 과정이 적은 반면, 생물학, 화학, 물리, 지리 등의 과목에서는 필수보다 심화 과정이 더 많이 개설된다는 특징이 있다. 학생들이 대학 본고사에서 원하는 학과 시험에 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한 조치다.
이처럼 핀란드는 문·이과 통합 운영의 장점을 살리면서 학생들이 대학의 전공 분야에서 필요한 학습도 할 수 있는 효율적인 교육과정과 시험제도를 구축하고 있다. 최근에 국내에서 고교의 문·이과 통합을 논의하다 결국 당장은 현행 체제를 유지하게 됐다. 문·이과 통합에서 중요한 것은 통합으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치의 마련일 것이다. 그에 맞는 교육과정 편성, 입시제도 개편의 근본적 대안 없이 통합부터 시행한다면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설픈 공청회나 열어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교육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으고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