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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

불안하면 신발 닦는 아이

시험을 앞둔 어느 날, 한 남학생이 상담실을 찾아와 “공부를 하려고 해도 집중이 안돼요”라고 했다.

교과교사 시절의 나는 그런 학생들에게 “누구는 집중이 잘 돼 하냐? 다들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거야”하면서 좀 더 노력하라고 다독이곤 했다. 하지만 상담교사가 된 지금 그런 말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게 됐다. 대화를 해보면 학생들이 공부할 때 집중이 안 되는 원인이 참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왜 집중이 안될까? 공부를 하려고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니?”라고 물었다. 그 아이의 답은 엉뚱하게도 “신발을 닦고 싶어져요”였다.

참으로 황당한 대답이다. 하지만 그 대답 속에 답이 있다.
이 아이는 시험불안을 신발을 닦으며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뿐 아니라 운동을 하다가도 잘 안되면 신발을 찾아 닦는다는 것이다.

나는 학생의 심리를 ‘반복강박적인 무의식적인 행동’이라고 판단했고 원인을 찾아 의식에서 인식하도록 하면 잘못된 행동도 없어지고 공부에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행동의 원인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학생의 말에서 어린 시절 신발과 관련된 무슨 큰 사건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에 계속 이리저리 물어보았지만 아이는 쉽게 기억해내지 못했다. 이는 당연하다. 학생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라 의식에서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기 위해 “만약 네가 신발을 닦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기니?”라고 물었다. 학생은 “‘저 아이는 왜 더러운 신발을 신고 다니지?’ 하며 쳐다볼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나는 “누가 쳐다보는데?”라고 다시 물었다.

이렇게 질문하는 이유는 학생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자신과 가까운 누군가의 시선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거나 힘들지 않다.

학생은 뜻밖에도 “아버지요”라고 답했다.
나는 매우 흥분된 마음으로 “그래? 그럼 혹시 어린 시절 신발 때문에 아버지와 무슨 일이 있지 않았니?”했더니 학생은 “있어요”하며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학생은 자신이 어릴 때 실내화를 밖에서도 신어 아버지께 매우 심하게 맞은 적이 있고 그 뒤로는 실내화를 신고 와서 깨끗하게 닦아놓았다고 한다.

모든 얘기를 듣고 나는 학생에게 더러운 실내화로 인해 아버지께 혼나면서 불안 심리가 생긴 것이고 그 이후 사건은 잊었지만 신발과 아무런 상관없는 불안에도 무의식적으로 신발을 닦게 된 것이라 설명해 줬다.

아이는 뭔가에서 깨어나듯 놀라면서 “어! 정말 제가 그랬네요”하며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고자 했던 무의식적인 행동을 의식에서 깨닫게 됐다. 그 뒤로 그 학생은 공부하다 불안해도 더 이상 신발 닦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아이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사람은 의식적인 행동만 하는게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아이라 할지라도 아주 사소한 문제로 인해 심리적인 문제가 생기면 이를 깨닫기 전에는 의식적인 차원에서 아무리 훈계하고 방법을 일러줘도 행동이 수정되기 어렵다.

수업시간에 멍하게 있는 아이, 상황에 맞지 않게 말하고 행동하는 아이, 현실을 왜곡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이의 마음을 따라가는 깊은 대화를 해봐야 한다.

이제 이 아이는 공부로 인해 생기는 현실적인 불안을 건강한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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