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을 던져도, 말을 해도 안되는 피구를 할 거예요.”
7일 오전 10시 서울계상초(교장 정광선) 국악실. 사각형 구획 밖에 둘러앉은 학생들이 안에 서있는 상대팀 친구의 발을 맞추려고 공을 굴린다. 공을 던져서 맞추는 평소에 했던 피구와는 다른 방식이다. 공을 굴려 조준해야 하는 이 신체 활동은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과 연관돼 있다. 침묵하라는 규칙 또한 감정을 말로 내뿜지 않고 참아내며 자기조절력을 키우기 위한 차원이다.
던지는 피구에 익숙한 아이들에게는 이 규칙을 따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1학년 현석(가명) 군은 공을 위로 올려 던지다가 스스로 크게 놀라는 모습을 보여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규칙을 어기고 공을 자기가 먼저 던지겠다고 소리치던 학생들도 차츰 말없이 다른 친구에게 공 굴리는 순서를 양보했다. 피구를 마치고 학생들이 억눌러 왔던 감정을 발산할 수 있도록 부정적인 감정들을 그려놓은 감정판에 물티슈를 마음껏 던지는 활동을 했다.
2학년 정원(가명) 양은 “공을 굴려서 맞추니까 힘들었는데 나중에 물티슈를 던졌더니 감정까지 날아간 것처럼 시원했어요”라고 말했다.
이는 국제구호개발 NGO인 굿네이버스가 진행하는 희망나눔학교 수업의 일환이다. 굿네이버스는 방학 중에 적절한 보호를 받기 어려운 저소득층이나 맞벌이 가정의 아동을 대상으로 지난 4일부터 2주에 걸쳐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2002년 시작 당시에는 결식 학생을 위한 중식 제공에 초점을 뒀다. 그러나 이제는 인성과 사회성, 창의성 계발에 도움이 되는 전문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강화하고 있다. 이번 겨울에는 전국 185개 초교에서 3400여 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감정 조절과 해소, 협력을 주제로 진행된 이날 수업에서는 젠가 게임과 보드 게임이 이어졌다.
“이번엔 2번 뺄게.”
“아니, 그러면 이쪽이 비어서 쓰러져. 다른 걸로 해.”
4~5명씩 조를 짜서 팀별 대항으로 진행된 젠가 게임은 학생들이 나무 블록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한 전략을 짜면서 자연스럽게 소통의 시간이 됐다. 한쪽 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다른 친구가 알려주면서 협력의 중요성을 배우게 했다. 조심스럽게 나무 블록을 빼면서 불안을 극복하고 조절할 수 있는 기회도 됐다.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번호에 따라 주어진 질문에 답해가며 72개 숫자판의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는 보드게임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남과 공유하는 시간으로 기획됐다. ‘무엇이 가장 무서운가요?’라는 질문에 3학년 지선(가명) 양이 “엄마요. 화를 많이 내요”라고 하자, 다른 조에서도 “맞아요”, “저는 아빠가 무서워요”라는 답변이 나왔다.
프로그램을 진행한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3학년 유지현 씨는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게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감정 표현과 조절 능력을 배울 수 있어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희망나눔학교는 학생들이 미래 직업을 체험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연계한 체험활동, BMW코리아 미래재단의 후원으로 도입된 환경교육 프로그램 등도 운영했다.
이혜경 굿네이버스 심리정서사업팀장은 “희망나눔학교를 통해 방학이 되면 더 외로워지는 아동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