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주말을 맞아 가족과 함께 주변에 있는 유적지를 찾아 조상이 남긴 훌륭한 문화 유산을 둘러본 일이 있다. 모처럼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즐겁게 저녁식사를 마친 후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누르자마자 출연자들의 괴성에 가까운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강렬하게 쏟아져 나왔다.
마치 무슨 사석에서 친구들끼리 아무 거리낌없이 주고받는 대화처럼 정제되지 않은 말이 난무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나이 지긋한 출연자의 상스러운 욕설까지 들렸다.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텔레비전속에 빠져들었지만, 여과없이 전달되는 말이 혹시나 아이들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할까 걱정되어 산책하자는 핑계를 대고 텔레비전을 끈 후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던 웃지 못할 경험이 있다.
이처럼 교육적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은 방송 언어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방송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출연자의 개인적 인간관계를 떠나 방송을 지켜보는 수많은 시청자와의 관계이기 때문에 당연히 품위있고 절제된 언어를 사용해야 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일부 프로그램의 경우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은 채 여과되지 않은 속된 말이나 선정적인 말을 함부로 주고받는 것은 불쾌감의 차원을 넘어 언어폭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언어 습득 단계에 있는 어린이나 정서적 발달 과정에 있는 청소년들은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가장 모범적인 말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따라서 방송 언어는 저속한 은어, 비어, 속어 등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는 속담처럼 분별없이 사용된 방송 언어는 자칫 순수함으로 가득찬 아이들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제작자나 출연자들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혹자는 말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그것은 교육하는 사람들이 할 일이지 방송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일은 아니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리고 방송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현상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기 때문에 방송 언어도 그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은 방송의 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온 오해라고 할 수 있다. 즉, 방송은 사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전체 국민의 공익을 우선해야 된다는 나름의 존립 근거를 갖고 있다. 특히 공영방송은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기에 말 하나에도 신중을 기해야 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말은 교육에서만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방송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바로 교육인 셈이다.
지식과 정보의 수용성을 강조하는 현대사회에서 방송의 영향력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방송의 역할이 크다는 것은, 높은 책무성도 함께 요구된다는 뜻이다. 언제든 마음놓고 자녀들과 함께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방송을 접할 수 있는 권리가 모든 부모에게 있다면, 이는 방송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높은 공인의식과 끊임없는 자질 향상을 통하여 성취될 일이다. 잘 다듬어진 말은 무한한 감동과 행복을 선사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방송에서 확인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