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멋쟁이 수진이, 턱 받치고 앉아 짝 친구와 몰래 떠드는 장난꾸러기 명훈이, 여자 애처럼 소곤대기 좋아하는 병훈이, 소리지르기 대장 은혜가 모인 수진이 모둠은 늘 내 신경을 건드리곤 한다. 오늘도 예외 없이 수업 시간마다 내 시선을 잡아두는 녀석들. 감각적이고 재미있는 공부가 아니면 금방 싫증을 내고 딴청부리는 아이들이 이해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다잡아 주지 않으면 학습 분위기가 흐려지곤 한다.
어쩌면 아이들과 나는 날마다 숨바꼭질을 하고 사는 지도 모른다. 선생님 몰래 소곤대는 재미, 짝꿍이랑 주고받는 쪽지의 쏠쏠한 즐거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며칠 뒤에 치르게 될 우리 반의 수업 공개 때문에 마음이 바쁜데 녀석들은 남의 동네 이야기로 들리는 모양인지 예습 과제에도 시큰 둥, 발표 자세에도 성의가 없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행사가 필요했다. 떠들면 모둠 점수를 깎는다 해도 잠시뿐, 꿀밤을 맞아도 돌아서면 그 모습. 아이고, 이 노릇을……. 생각 다 못해 즉석으로 고사를 지내기로 했다. 충격적인 방법을 쓰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
“수진이네 모둠은 떠들지 않도록 고사를 지내야겠다.” “예 ? …….” “고사엔 뭐가 제일 필요하지? 돼지 머리가 아니니? 네 명중에서 두 사람이 그 역을 맡고 두 사람은 절을 하면 되겠어. 돼지 콧구멍에 쑤셔 넣을 돈이 필요한데, 동전은 위험하고…….” “예, 선생님. 여기 돈 있어요.”
영리하고 동작 빠른 연웅이가 어느새 종이돈을 가지고 나온다. 그래도 남자라고 병훈이와 명훈이가 임시 돼지가 되었는데 좀처럼 콧구멍에다 돈을 끼울 생각을 안 한다. 벌점을 깎는다는 말에 다급해진 수진이와 은혜가 두 녀석의 코 대신 귓구멍에 종이돈을 끼우고선 넙죽 절을 한다.
그 녀석들이 뭐라고 빌었을까? 떠들지 않는 모둠이 되게 해 달라고 빌랬는데……. 아이들은 즐겁게 공부한 시간보다 자그마한 이벤트(?)를 먼 후일까지 기억하곤 한다. 선생님이 얼마나 참으면서 ‘사랑의 매’를 남발하지 않으려고 궁여지책을 쓰는지 알아주면 좋으련만.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부끄러움을 느껴 공동 생활의 태도를 익혀 주는 게 공부를 가르치는 일보다 힘든 교실.
거창하게 교실의 위기라고 몰아붙이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은 늘 아이들일 뿐이다. 그들은 여전히 착하고 단순하다. 다만 본을 보여줄 부모와 어른들이 바빠서가 아닐까? 쉽게 포기하는 내 탓은 아닐까?
67일째에 올린 우리 반의 고사(?) 덕분에 이번 수업공개는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