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담양 읍에서 6학년을 담임할 때의 일이다. 서른 명이 넘는 우리 반 아이들은 한 달이 멀다하고 자잘한 말썽을 부려서 내 속을 뒤집어 놓곤 했다. 오죽하면 담임한 지 100일이 되던 날에는 약식으로 고사(?)까지 지내며 무사고를 빌었으니까.
그 덕분인지 여름방학 동안 아이들은 별 탈 없이 지내주었다. 하지만 그 효력도 잠시. 2학기가 시작되고 9월을 거의 보낸 어느 날 아침. 동 학년 회의로 2, 3분 동안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3층 우리 교실 통로 쪽에 걸린 대형 거울이 박살이 난 것이다.
먼저 다친 아이가 없는 지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사고를 낸 자초지종을 물으니 대답이 가관이었다. 복도에 나와서 내가 오나 망을 보던 녀석들이 거울 앞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이다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등장 인물들의 이름 가운데 글자가 똑같이 ‘밝을 명(明)’자가 들었으니 훤한 거울 앞에서 기가 발동했던 모양. 우리 반의 수재에 한 덩치 하는 강명성, 오락 게임의 귀재 유명관, 사나이다운 서명진이 아닌가?
아이들이 다치지 않은 것이 확인되자 확실한 책임 소재를 밝히기 위한 현장검증(?)에 들어갔다. 전체 아이들 앞에서 당시 상황을 재현하라고 했더니 망설임도 없이 복습하는 철없는 녀석들을 보며 아이들이 킥킥대며 웃기 시작했다. 저학년도 아닌 6학년이기에 따끔하게, 그러면서도 평생의 추억거리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내린 판결은 수학 시간에 배운 대로 주연, 조연, 관객의 비율이 7:2:1이 되게 비례배분 한 것. 거울 앞에서 멋지게 폼을 잡고 이단 옆차기를 보인 명관이가 주연, 그걸 따라서 한 명진이가 조연, 다리 한 번 올려 보지 못하고 만원을 물어낸 명성이는 억울해 하면서도 학급 대표로서 방관한 책임을 졌다. 명관이 부모님도 평소에 부잡한 아들 녀석의 버릇을 고쳐야 한다며 거울 값을 보내 주셨다. 예방지도를 못한 내 잘못이 더 컸지만 그렇게 수습하고서도 나는 늘 미안했다. 작년 여름에 몇몇 아이들이 집에 와서 놀다 가면서 ‘명 트리오’사건으로 한바탕 웃었다.
속 타던 안타까움도, 아이들에게 미안했던 일들도 시간 속에 묻혀 이젠 그리움이 되었다. 아이들아, 부디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라. 밝게(明) 살아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