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성적평가를 하면서 수행평가를 적용한지도 꽤 오래된 것 같은데 평가 자체에 대한 타당성, 객관성, 공정성, 신뢰성에 대해 만족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수행평가가 처음으로 시작된 것은 병원에서 의사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여러 명 지원자의 서류를 분석하였으나 성적이 모두 비슷하여 고심하던 차에 헌혈 기록이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한다. 그래서 평소 헌혈을 한 사람이 의사로서의 자질이 있다고 판단되어 그를 선발하였다는 것이 수행평가의 효시라 전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수행평가는 지식의 평가보다 인간됨의 평가에 더 비중을 두었던 것 같다.
현재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수행평가는 이와는 거리가 멀지만 각 교과별 수행하는 능력을 측정해 보고자 하는 취지다. 그래서 종래의 객관식이나 주관식 평가에서 측정하기 어려운 교과별 수행능력을 점수화하여 이를 합산함으로써 학생들의 교과별 학습 성취 수준을 평가하려 한다.
처음 이 제도를 시행할 때에는 모든 교과가 수행평가를 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실기 과목은 실기 평가 자체를 수행평가로 대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외의 교과목은 듣기, 말하기, 글짓기, 보고서, 자료 수집, 제작 활동, 토론, 체험, 노트 정리, 수업 태도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교과의 수행 능력을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수행평가를 점수화 하면서 교사, 학생, 학부모는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되었고 그 결과에 대해 많은 문제점을 발견하고 있다.
첫번째의 문제는 수행 과제물이나 실기 평가를 하면서 공정성이 결여되기 쉽다는 점이다. 그룹별 측정을 하다 보면 더욱 그러한 현상이 생겨나기 쉽고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을 받아보아도 대부분의 과제물이 인터넷에서 자료를 그대로 복사하였거나 아니면 다른 학생들의 과제물을 베껴서 내고 있다. 그리고 학부모나 남이 만든 과제물을 내는 아이들도 있다. 저학년일수록 그러한 경향은 더 심하며 이를 확실하게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
또 대동소이한 과제물을 계속 평가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분별력은 떨어지게 되고 편견에 빠져 점수를 주어버리기는 경향도 있다.
두번째 문제는 실기 평가나 과제물 평가를 해보면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비슷비슷한 보고서나 글짓기, 자료 수집, 자료 제작 등을 평가해 보면 정말 우열을 가리기 힘든다. 어떤 학교에서 학부모가 수행 점수에 불만이 있어 학교를 찾아와서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창의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무엇이냐고 따졌다 한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는 말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창의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공감이 간다.
세번째 문제는 수행 평가가 학생들에게 너무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는 점이다. 과제를 내는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한 과목이지만 모든 교과목의 수행평가를 받아야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분량이요 힘든 작업이다. 한 학기에 수행평가를 두 번 하는 교과목이 있다고 한다면 일년에 네 번, 모든 교과목을 합치면 그 분량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중간 ․ 기말 정기 고사, 모의고사가 겹치기라도 한다면 학생들은 엄청난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히 어린 학생들일수록 수행평가에 대한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고 있다고 학부모들은 말하고 있다.
네번째 문제는 짧은 기간에 교사 한 사람이 채점을 하여야 하는 수행 과제물의 영역과 분량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실기 평가도 마찬가지다. 무리한 분량의 평가를 하다보면 평가가 부실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다섯번째의 문제는 현행 수행평가가 과연 교과의 수행 능력을 적정하게 평가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실기 평가의 한 번 실수, 노트 정리, 수업 태도 등이 과연 교과의 수행 능력일까 하는 점이다.
일선 학교에서는 어려운 여건이지만 수행평가의 타당성, 공정성, 객관성, 신뢰성을 얻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서 평가 항목과 기준을 세분화하여 개선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역과 기준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점수 매기기가 더 혼란스러워지고 평가 결과는 공정성을 잃게 된다.
'척 보면 안다'는 옛말처럼 교과 수행능력을 쉽게 알 수도 있는데 일정한 척도를 만들어 평가를 하다 보면 오히려 불공정한 늪으로 빠져드는 모순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수행평가는 오픈된 환경에서 과제물이 만들어져 제출되기 때문이다.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자세히 알 수 없는 일이며, 또 제출 기간도 엄격하게 통제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기 고사는 엄격한 시간 통제가 가능하지만 수행평가는 느슨한 시간 통제의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제물 평가를 하면서 평가자의 편견이 언제나 개입될 여지가 항상 있다는 점이다. 어떤 학교에서는 과제물 미제출자가 많아 전반적인 평가 분위기를 흐리게 하기도 한다. 과제물을 제출하지 못한 학생들은 너무도 당당하게 '영점 처리 하세요'하는 풍토다. 이를 그대로 둔다면 평가의 권위, 교사의 권위, 학교의 권위는 어떻게 될까?
또 열악한 교육 환경에 처해 있는 아이들은 과제물을 프린트해 내기도 어려워서 학교의 특별실이나 교무실의 인쇄기를 이용하여 출력을 부탁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이 약한 아이는 부탁도 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대다 손해를 보기도 한다.
이상에서 열거하지 못한 수많은 문제들이 수행평가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다. 수행평가는 쉽고 공정하게 교과의 수행능력만 측정하면 된다. 수행평가를 잘못하면 아니함만 못한 결과가 초래된다는 점을 명심하였으면 한다.
점수화된 수행평가! 개선할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개선을 하여야 한다. 점수화된 봉사 활동이 진실한 봉사활동을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교과별 수행능력 평가를 한다는 것이 오히려 수행능력을 잘못 평가하지 않았으면 한다.
각급 학교는 성적평가관리위원회를 통하여 현행 수행평가 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면밀하게 분석, 검토하여 그 보완책을 세워야 한다. 교사들 또한 한결 업그레이드된 평가 방안을 모색하였으면 한다. 수행평가는 쉽고 간편하며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무리한 평가 방법은 무리한 부담만 주고 불공평한 결과만 초래하기 쉽기 때문이다.
정기 고사 기간을 더 늘이는 한이 있더라도 공정하고 객관성이 있는 수행평가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이미 모의고사나 도 주최 모의고사에서 단답형 주관식을 수행평가로 간주하고 있기에 이를 수용하면 어떨까?
'척 보면 안다'는 평범한 말이 있다. 먼저 학생이나 교사들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학생들의 교과별 수행능력을 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을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