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 토요일은 산골 분교에서 아름다운 잔치가 열린 날이었다. 비가 온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계획을 세운 민간기업과 우리 분교의 뜻을 하나님도 막지 않으실 거라는 확신으로 행사를 밀어붙인 것은 박은연 대리와 나의 모험이었다.
그것은 우리 학교와 자매결연으로 2년 동안 행사를 함께 해 온 민간 기업(SK텔레콤 서부마케팅 본부)이 또 다른 자매결연 단체인 소화성 가정(정신지체장애우 생활시설)의 원생들에게 여름철 물놀이 행사를 추진하기 위해 우리 분교와 함께 하는 행사였다.
40여명에 가까운 장애우들과 민간 기업 자원봉사자 17명을 맞이하기 위해 작은 산골 학교는 며칠 전부터 바빴다. 2년 동안 도움을 많이 받으면서도 보답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미안함을 덜기 위해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머리를 짜내어 행사 준비를 해왔었다.
우리들의 자랑인 바이올린 연주와 사물놀이, 핸드벨 소리를 다듬기 위해 임명희 선생님과 김점쇠 선생님은 점심시간도 잊으셨고 아이들도 방과 후 시간과 아침 시간을 이용하여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이다. 아침 일찍 전교어린이회를 연 아이들은 풍선을 불어서 그 위에 예쁜 그림과 글을 쓰고 편지를 매달아 장애우들에게 줄 선물을 만들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전교생 16명이 회의를 하여 의결된 아이디어는 사랑스럽기만 했다.
오전 10시 30분은 지나며 선발대로 도착한 지원봉사자를 선두로 11시에 들어오기 시작한 장애우들과 사회복지사님들, 수녀님 두 분이 이름표를 달고 온 어른아이(장애우)들의 표정은 참 밝고 따스했다. 하나같이 손을 흔들고 악수를 청하며 반가움을 표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슬비가 오락가락 하는 중에도 무사히 행사를 마칠 수 있을 만큼 비가 그친 하늘이 참 감사했다.
운동장에 자리를 깔고 앉은 장애우들을 위해 교정의 화단 안에 들어가서 숲 속 작은 음악회를 선보인 시간. 1년 먼저 바이올린을 배운 아이들은 약간 어려운 곡을 연주하고, 늦게 배운 1학년과 유치원생은 쉬운 곡으로 연주를 했다. 그 때마다 즐거워하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애우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며 함께 행복해 한 우리들이었다. 다음으로는 7명의 분교 소녀들이 연주하는 핸드벨 소리가 계곡을 타고 흘렀다. 온 세상에 사랑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음악을 선물한 것이다. 뒤이어 장애우들의 슬픔과 아픔을 거둬가기를 바라며 시원한 사물놀이 공연에 한여름 더위조차 물러간 듯 시원하였다.
장애우들도 뒤질세라 그동안 갈고닦은 무용을 선보이며 우리들을 놀라게 했다. 몸의 나이는 우리 아이들보다 대선배였지만 그들의 표정과 말씨는 아이들 못지않게 천진난만했다. 대견함과 안타까움, 아픔을 느끼면서도 아무런 힘도 도움도 못되는 나의 무기력한 모습이 미안해져 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장애를 가진 그 분들의 행복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맛있는 점심을 함께 먹으며 다시금 한 식구가 되었다. 서로 먹으라고 권하는 모습, 나눠 먹는 아름다운 모습은 처음 만난 사람들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토요일인데도 늦게까지 행사에 참여하면서도 즐거워하는 아이들도 보기 좋았다.
이어서 분교 아이들과 장애우들이 함께 장애물 경기를 벌이며 운동회 기분을 한껏 즐겼다. 사탕을 먹으려고 밀가루 범벅이 되어도 웃었고, 풍선을 터뜨리려고 꼭 부둥켜안은 모습도 아름다웠다.
아이들은 자기 덩치보다 훨씬 큰 장애우들의 품에 안겨서 풍선을 터뜨리면서도 싱글벙글 즐거워했다. 마치 그 분들의 아픔을 다 이해하기라도 한 듯이.
이번에는 더워진 몸을 계곡물에 담그기 위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첨벙대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장구를 치고 헤엄을 치는 아이들과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몸으로도 물속에 몸을 담그고 좋아하는 장애우들, 그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살아온 수녀님과 사회복지사님들, 회사의 자원봉사자들의 어우러짐을 부지런히 찍어대는 카메라 기자들까지 여름 낮 한 때를 맑고 시원한 계곡에서 천국의 시간을 보냈다. 아마 저 모습이 천국의 모습이리라.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웃음과 장애를 가졌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돌보며 지켜주는 사람들이 웃으며 살 수 있는 곳이라면 그 곳이 바로 천국이리라.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으며 우리 모두는 어깨동무를 하고 ‘사랑으로’를 부르며 이 세상을 ‘사랑’으로 살 것을 마음 속 깊이 다짐했다. 고사리 손으로 만든 풍선을 선물 받으며 덩치 큰 장애우들이 펄펄 뛰며 좋아하는 모습, 더듬더듬 편지를 읽으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려왔다.
몸이 불편하니 마음대로 나다닐 수 없는 장애우들을 보며 우리들이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인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표정은 너무나 밝고 환해서 서글플 정도였다.
어쩌면 가진 조건에 만족하고 불평하지 않으며 날마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사는 그들이야말로 모든 것을 가진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 있음이 행복하고 걸을 수 있으니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으니 행복하다는 그들.
오늘 우리 분교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그 어떤 지식보다 더 감동적이고 살아있는 체험을 했으리라. 장애우들과의 만남을 위해 우리 아이들이 준비한 작은 음악회, 함께 뛰며 어울린 시간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잊지 않고 먼 후일 베푸는 삶을 살아가리라고 굳게 믿는다. 장애우들은 결코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며 같이 숨쉬는 공간에서 정과 사랑을 나누어야 할 사람임을 몸으로 배웠으리라.
행사를 마치고 다섯 시를 넘겨 늦은 퇴근을 하면서도 마음은 행복함으로 부자가 된 것 같은 하루. 이제 우리 분교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우리들도 장애우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는 적극적인 생각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받기만 하는 산골 분교가 아니라 우리들도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행복의 씨앗을!
올 여름은 물질과 봉사로 산골 아이들에게, 장애우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기업과 자원봉사자를 보며 우리 아이들의 생각의 키는 피아골의 나무들보다 더 커졌으리라. 자매결연으로 친해진 아저씨와 누나들의 얼굴을 예쁘게 그리며 감사편지를 쓰는 1, 2학년 아이들의 입에 왕사탕을 물려주며 나도 다시 사랑을 복습한다.
‘사람이 행하고 경험하는 일이 참된 행복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행복은 더욱 절실하게 남에게 주고 싶어진다.’ 톨스토이의 말처럼, 이제 우리는 참된 행복의 전도자가 되는 교실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