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물결 모양을 그대로 복사한 듯한 앙증스런 요철 모양의 갯벌 바닥이 발바닥을 간지럽힌다. 군데군데 물이 괸 웅덩이 가장자리에는 밤하늘의 별들 같은 아니 반딧불 같은 발광체들이 미풍에 몸을 맡기고 하염없이 흘러간다. 여름날 어둔 밤에 바다 새우나 꽃게 등에서 반딧불 같은 광채가 나는 것을 많이도 보아 왔지만 갯벌에 괸 바닷물에서 이처럼 빛이 나는 것을 바라보며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멀리 부안 ‘계화도’가 어둠보다 더 어둡게 시야를 가로 막는다. 몇 개의 마을 불빛이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지만 ‘계화도’가 없다면 동서남북도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어둔 밤이다. 강 하류의 긴 제방을 내려와 끝없이 펼쳐진 갯벌을 거의 삼십 분 이상 걸었다. 밤하늘의 북두칠성과 어둔 ‘계화도’의 실루엣을 방향 삼아 생합(대합)을 잡으러 갔다 . ‘언제쯤 잡힐까?’ 기대에 찬 마음으로 ‘그렝이’의 칼날을 갯벌에 묻고 대나무 자루를 손으로 움켜잡고 어깨 끈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열심히 끈다. 마치 소가 멍에를 둘러쓰고 논을 갈듯이 모든 신경을 갯벌 속의 소리에 집중하고 계속 끈다. 어느 사이 이마에서는 땀이 솟는다. 숨소리가 빨라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지치는데…….
‘딸칵’ ‘우지끈’ 갯벌 속에 묻혀서 ‘스르륵 스르륵’ 딸려 오던 ‘그렝이’가 어깨에 꽤나 큰 충격을 주면서 소리 내며 튕겨 나온다. 경쾌한 소리로 보아 틀림없는 생합이다. 갯벌 속에 묻혀있는 조개들 마다 ‘그렝이’와 부딪힐 때 나는 소리가 다르다. 둔탁한 소리를 내는 것은 별로 반갑지 않은 ‘배꼽’이거나 ‘꼬막’이다. 지쳐가던 몸과 마음은 어느 새 새로운 힘을 얻는다. 그 경쾌한 소리를 다시 듣기 위해서……. 자꾸만 무거워지는 망태기가 벅차기는 하지만 묵직한 생합을 손바닥으로 쥐어 보는 순간의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그 때가 고1 이었다. 가정환경이 넉넉하지 못한 나는 여름날 일요일이거나 물때가 밤일 때에는 곧잘 동네 어른들과 함께 생합을 잡으러 가곤 했다. 어른들은 보통 6-7관을 잡는데 비해 서툴기만 한 나는 많이 잡아봐야 2관 정도였다. 2 관이라고 해야 40원 정도의 수입이었다. 적은 돈이지만 내 힘으로 벌어 쓸 수 있는 용돈이기에 가치 있는 돈이긴 했지만.
세 시간 정도 열심히 끌고 다닌 덕에 망태기가 꽤나 무겁다. 밀물이 시작된다. 얕은 도랑물이 갯벌을 타고 서서히 밀려온다. ‘그렝이’를 정리하고 물보다 빠른 걸음으로 출구로 향한다. 어둠 속에서 서로 아는 사람들을 찾아서 이름을 부르면서 한 무리를 이루어 바쁜 걸음을 걷는다. 망태기에서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발걸음의 빠르기에 맞추어 기분 좋은 리듬이 된다. 몇 관이나 잡았을까. 팔면 얼마나 받을까.
그러나, 아직도 출구까지는 멀었는데 갑자기 시장기가 엄습해 온다. 배가 너무 고파진다. 움직일 기운이 없다. 나가면 사 먹을 수 있는 찐빵이 눈에 아른거린다. 생합을 팔아서 그 돈으로 찐빵을 사먹어야지. 생합 1관에 20원인데 찐빵 1개가 5원이나 했지만.
“3관이다. 오늘은 많이 잡았구나!” 상인의 말이다. 60원이면 꽤나 큰 돈이었다. 허기진 배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우선 찐빵부터 샀다. 세상에서 그처럼 맛있는 빵이 또 어디 있을까. 약간 시큼한 맛과 앙꼬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감촉의 찐빵을 오래도록 씹는다. 빨리 넘기기가 너무 아까워서……. 한 개 더 사 먹고 싶지만 꾹 참는다. 빵 한 개가 5원이나 하는데……. 집에 가면 보리밥이지만 실컷 먹을 수 있으니까.
‘생합 1kg에 5원 찐빵 1개도 5원’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요즘은 그만한 생합이면 1 Kg에 2만 원도 더 간다. 찐빵은 1개에 250원이다.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때의 5원 짜리 빵 한 개는 생합 1 Kg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으니까. 찐빵 한 개를 먹고 한참 있으니 걸을 만한 힘이 생긴다. 동쪽 하늘에서 하현달이 얼굴을 쑤욱 내밀고 어둠을 밀어낸다. ‘진작 좀 나오지…….’ ‘자! 빨리 집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