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텔’ 고운 색 가루가 묻어날 것 같은 저녁놀을 물들이는 태양이 곱다. 온종일 힘차게 이글거리며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던 태양이 또 다시 맞이할 내일을 위해서 휴식을 취하려나 보다. 구름 한 점 바람 한 점 없어 시간도 잠들어 있을 것 같은데, 칠팔 마리 기러기들 떼 지어 붉은 색 가루 둘러쓰고 보금자리 찾아 날아간다.
학교 공부를 마치고 저녁놀 고운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논길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고 있다. 언제나 단짝인 그 친구와 함께 느릿느릿 걷고 있다. 학교에서 있었던 얘기들을 하면서……. 그 친구와 나는 반이 다른 같은 6 학년이었다. 친구들 이야기, 선생님 이야기 등 할 말도 참 많았었다. 그 친구는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을 휘어잡는 통솔력도 있었고 싸움에서 절대 지지 않는 ‘보스’ 기질도 있었다. 집안 형편이 비슷하기에 우리는 더 친했는가 보다.
아마도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야산조차 없고 논만 있는 ‘면’이 우리면 이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시곤 했다. 일제 시대 식량난 해소를 위해 간척사업으로 생겨난 개펄 간척지다. 오직 벼농사만을 주로 짓고 이모작으로 겨우 보리를 경작하는 고장이다. 그렇게도 논이 많은 고장이었건만 왜 배고픈 사람들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추수를 끝낸 너른 논에는 싹둑 잘린 벼 그루터기만이 질서 정연하게 남아 있다. 벼 그루터기 사이사이를 가로질러 땅거미의 거미줄들이 붉은 저녁놀에 물든 채 끝없이 펼쳐져 있다. 바짓가랑이와 발등에는 온통 거미줄로 범벅이 될 텐데도 의식하지 못한 우리는 그냥 ‘깔깔’거리며 걸었다. 아직 거둬가지 않은 짚무지(그땐 짚이 주 연료)가 쌓여 있는 곳에 이르자 그 친구는 어깨에 맨 책보자기를 내려놓는다. ‘부시럭부시럭’ 뭔가를 꺼내 놓는다. “아니 그게 뭐니?” 묻지 않았어도 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돼지 ‘귀때기’였다. 약간의 붉은 근육 살이 조금 붙어있는 돼지 ‘귀때기’였다. 1년에 두세 번도 먹기 힘들었던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였다. 기껏 명절 때나 어른들 생일 때 외에는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러기에 그런 고기들을 실컷 먹어보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었다.
나는 학교 근처 정육점 앞에서 얼씬거리고 있던 그 친구가 생각났다. 주인이 한 눈을 파는 사이에 진열해 놓았던 그 물건을 슬쩍했던 것이다.
짚을 모아 성냥불로 불을 피워 모닥불을 만들어 이리저리 구웠다. 제대로 익었는지 알 수 없지만 소금도 없이 먹었다. 배도 고프고 먹고 싶던 고기라서 단숨에 먹어 치웠다. 입 주변은 온통 검댕투성이었지만 우린 서로를 바라보면서 웃기만 했다. 그 친구는 이미 25 년 전에 고인이 되었지만 그 검댕투성이의 웃는 얼굴이 눈에 선하다.
아직 붉게 물든 저녁놀만을 남겨두고 해는 어느 사이 지평선 너머로 숨어 버렸다. 이내 어두워지는 논길을 부지런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