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며 주번제도를 과감히 폐지했다. 전부터 두 명의 학생이 한 조가 되어 1주일 동안 교실 청소를 도맡아 왔던 주번제도는 마치 학급 운영의 관례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10년 넘게 담임을 해본 결과, 주번제도에 문제가 많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주번을 맡은 학생들 사이에는 학급과 동료들을 위해 봉사한다기보다는, 1주일만 적당히 때우면 그만이라는 식의 기회주의가 만연했고, 주번이 아닌 학생들도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주번에게 미루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니 교실 내에서의 공동체 의식은 눈씻고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주번제도 대신 모든 학생들에게 한 가지씩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우선 두 명이 하던 일을 서른 다섯 명이 나눠 맡게 될테니, 서로 책임을 전가하거나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또한 학급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기 때문에 그만큼 빠르게 끝낼 수 있어 시간 활용에도 효율적이며, 무엇보다도 청결한 교실환경은 학습 능률을 높이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물론 아이들의 의견도 중요했다. 지금까지 두 명이 하던 일을 전체가 분담한다는 데 반대할 지도 몰랐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담임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곧바로 학급 내에서 필요한 서른 다섯 가지의 일을 만들어 놓고 아이들의 선택을 기다렸다. 처음에는 주저했던 아이들도, 몇몇 친구들이 선택을 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먼저 하겠다고 야단이었다.
처음 며칠 간은 익숙하지 않았던지, 모든 일이 매끄럽지 않았으나, 차츰 시간이 흐르며 정착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자신이 맡은 구역부터 깨끗하게 청소를 마친 후 자리에 앉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역할에 따라서는 정성과 시간이 더 필요한 경우도 있었으나, 대체로 맡은 책임에 충실했다. 어느덧 학급 환경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주번 제도를 운영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청결해진 것이다.
모두가 열심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교실 출입문의 유리창을 맡은 일주의 청소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유리창이 얼마나 깨끗했으면 마치 유리가 없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틈만 나면 유리걸레를 집어들어 닦고 있으니, 그 정성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교실 칠판 관리를 맡은 필수도 성실하기는 마찬가지다. 매 시간마다 칠판을 깨끗하게 지우고 분필 가루가 날리는 지우개를 털어다 놓는 수고로움 덕에 수업 시간은 늘 쾌적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교실 뒤편, 사물함 위에 놓여있는 화분을 관리하는 상혁이의 정성도 빼놓을 수 없다. 아침마다 화분에 물을 주고, 햇볕과 바람이 잘 드는 남쪽 창가에 올려놓았다. 또한 잎이 마르지 않도록 집에서 가져온 분무기로 수시로 물을 뿌려주고, 관리하기가 까다롭다는 난초는 화장지로 일일이 잎사귀를 닦아주었다.
청소 배정할 때 가장 인기 없었던 분야가 있었는데 바로 휴지통 비우기다. 남들도 꺼려 하는 휴지통 담당에 자원한 학생이 있었으니 바로 시골에서 유학 온 이용이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휴지통은 늘 차고 넘친다. 이런 휴지통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 비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이용이는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았다. 오히려 오물이 묻어 있으면 깨끗하게 닦아서 갖다 놓았다.
이처럼 아이들은 크든 작든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통하여 보람을 얻고 타인에게 기쁨을 주는 방식을 깨닫게 되었으니,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었던 소중한 지혜를 얻은 셈이나 다름없다. '교실은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말처럼 아침 풍경을 바꾼 아이들의 활기찬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오 '나 하나쯤이야'하는 습관적 관행에서 벗어나, '나 하나로 인하여'라는 공동체 의식으로 바끤다면 모든 사람이 행복을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란 믿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