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운동회를 연습 중인 아이들의 표정은 날마다 즐겁습니다. 개교 8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연습하는 바이올린, 핸드벨을 비롯해서 즐거운 무용, 사물놀이 공연 준비로 날마다 바쁜 아이들. 그런 중에도 학교 공부하랴, 아침이면 도서실에 모여 조용히 책을 읽는 모습은 참 예쁩니다. 우리 아이들은 숫자가 적으니 떠드는 일도 드뭅니다. 아무리 크게 말해도 계곡의 물소리보다는 크지 않습니다. 아니 이 아이들은 크게 말하는 법조차 모르고 삽니다. 어디서나 조용조용한 속삭임에 익숙해져 있어서입니다. 날마다 듣는 자연의 소리가 이 아이들을 이렇게 조용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학교에 오는 게 참 즐겁다는 아이들. 선생님이 보고 싶고 친구가 보고 좋다는 일기를 보고 있노라면 다가가서 아이의 볼을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습니다. 즐거운 생활시간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아이들의 청을 받아들여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지난 과학 시간에 화단가에서 수확한 봉숭아 씨, 분꽃 씨, 나팔꽃 씨 등을 심어 놓은 곳을 관찰하더니,
“선생님, 아직도 싹이 트지 않았어요. 죽었나 봐요.” 하는 아이들. “얘들아, 가을은 씨앗을 뿌리는 시기가 아니라서 그래. 씨는 봄철에 뿌려야 제대로 싹이 트는 거란다. 아마 그 씨앗들은 고생을 하고 나서야 싹이 틀 거야. 모든 것에는 적절한 때가 있는 거란다. 너희들의 공부도 꼭 해야 할 시기가 있는 것처럼.”
아이들은 자신들이 정성을 들인 것에는 무척 애착을 갖곤 합니다. 문득 우리 집 아이가 다섯 살 때 한 겨울에 사과를 먹고 화단에 씨를 심어놓고는 물을 주곤 하더니 어느 날엔가, “엄마! 내가 사과 씨를 심었는데 왜 싹이 안 나는 거야?” 하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제 딴에는 여러 날을 물을 주고 정성을 들이다가 애가 타서 물어본 것입니다. 그것도 한겨울에. 어쩌면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그렇게 단순하게 살 수 있다면 세상이 좀더 훈훈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약간은 바보스러운 듯, 뭔가 부족한 듯…….
우리 분교장은 학교 어느 곳이나 한 폭의 풍경화입니다. 늙어가는 도토리나무 아래에서 한창 꽃을 피우고 서 있는 코스모스에서부터 붉은 꽃을 보내고서야 파릇한 새잎을 내느라 바쁜 꽃무릇은 계절을 잊고 서 있습니다. 까만 몸을 드러낸 채 내년 봄을 기약하는 분꽃, 국화꽃이 피기 전에 시선을 잡아두는 과꽃도 한창입니다.
마음에 드는 풍경을 잡고 구도를 잡으며 울타리에 앉아서 바라보니 하늘이 온통 여름 바다처럼 시원합니다. 아이들과 나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와! 하늘이 바다 같다. 구름도 한 조각 없네!” 말갛다 못해 투명해서 풍덩 빠지고 싶은 하늘을 바라보며 뒤편에서는 계곡의 물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아름다운 풍경화를 스케치하는 아이들 곁에서 나도 가을 소녀가 되었습니다. 풀냄새, 꽃냄새를 맡으며 바람소리 물소리로 깨끗해지는 마음까지 담아내며 아이들은 가을 하늘처럼 맑아집니다.
자연만큼 훌륭한 스승이 어디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의 꿈도 갈매기 조나단처럼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그날까지 가장 높이 날아서 가장 멀리 볼 수 있기를 빌어보는 가을 날. ‘완성과 초월’을 향해 비상의 꿈을 가슴에 품고 완전한 자유를 위해 맹훈련과 자기와의 싸움을 즐겁게, 저 가을 하늘처럼 깨끗한 소망을 품고 가꾸며 계곡물처럼 쉼 없이 흘러가서 인생의 넓은 바다에 이르는 날까지 끝없는 노력을 다 할 수 있기를!
계절과 함께 숨 쉬고 새 이파리를 내며 꽃을 피우고 익어가는 가을 풍경만큼 아름답게 커 가는 자연 속의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처럼 영원히 자연을 스승 삼고 친구 삼아 살 수 있기를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