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억압이 사라진 민주주의 시대에 '페다고지'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항변하지만, 물질적 정신적 빈곤이 여전하고, 폭력적 제도와 관행이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는 현실로 인해 '페다고지'를 다시 살려내야 한다. 억압을 억압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고, 암울한 현실을 체감하지 못하게 하는 침묵문화의 조종이 여전하기에 이를 깨우치게 하는 의식화 교육은 필요한 것이다. 대화를 가로막는 시장적 신자유주의 공세를 방어하기 위해서도 '페다고지'의 목소리를 더욱 내야 하는 시기이다. - 심성보 부산교대 교수
프로이트도 지적한 바이지만 근대 교육학과 정치학은 불가능한 목표에 도전하는 학문처럼 보인다. 교육학은 아이들에게 기존의 가치들을 주입하면서 미래 사회를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정치학은 억압받는 민중들을 잘 지도하고 이끌어 자율적인 존재로 해방시킬 수 있다고 믿는 점에서 그렇다.
목표 달성 과정이 이미 그 목표를 부인하고 있는데도, 목표에서 한참 멀어진 결과를 보고 놀라는 풍경은 분명 희극적이다. 우리에게 이러한 풍경이 희극이 아닌 비극으로 읽히는 이유는 그 불가능한 목표가 우리의 소중한 꿈이기 때문일 것이다.
70, 80년대 금서 목록에 올라 진보적 지식인, 노동자, 학생들에게 민중의 의식을 깨우치는 책이자 교육자 자신이 교육받는 책으로 널리 읽혀진 파울루 프레이리의 전설적인 책 '페다고지'. 지난 2000년 미국에서 원서 발간 30주년을 기념해 '페다고지(피업악자의 교육학)'라는 이름으로
부활한 완역 '페다고지'는 잘못된 방법 때문에 불가능한 목표로 전락한 그 꿈이 ‘지금 여기서 창조될 수 있는 진리’임을 보여주고 있다.
프레이리는 교육학과 정치학이 부딪힌 한계에 한꺼번에 도전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 한계들이 사실상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의 교육학은 매우 정치적이다. 그는 교육이 민중들의 억압과 해방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에 따르면 진짜 ‘불순한’ 교육은 가치를 개입시키는 교육이 아니라 과학의 이름으로 가치를 배제하면서 현존하는 억압을 은폐하는 교육이다. 그러나 교육의 정치성을 폭로했기 때문에 높이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위대한 점은 이 두 학문의 목표와 방법을 완벽하게 통합한 데 있다. ‘교사-학생’의 관계는 ‘지도자-민중’의 관계이고, 교육적 대화와 실천은 곧바로 정치적 대화와 실천이다. 그에게 있어 세상을 배우는 것과 세상을 바꾸는 것은 같은 문제다.
때문에 그가 비난하는 나쁜 교육에서 나쁜 정치의 특징을 읽을 수 있다. 그가 비판한 ‘은행저금식 교육’을 보자. 교사는 예탁자가 예금을 쌓듯이 학생이라는 빈 그릇을 계속 채우기만 한다. 여기에는 대화가 없다.“ 지식을 가졌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아는 것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독백만이 있을 뿐이다.
나쁜 정치가 바로 그렇다. 나쁜 정치는 민중들의 말할 권리를 부정한다. 지배자들만이 말하는 독백 사회인 것이다. 독백은 상대방의 말할 권리를 빼앗고 노예나 사물처럼 취급한다. 그래서 억압적 사회에서 사람들은 노예나 사물처럼 철저히 비인간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문제는 민중들을 위한 교육과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도 이런 독백에 자주 빠진다는 점이다. 민중들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 인식하고, 그들을 위한다고 말할 때조차 그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낡은 습관에 젖어 있는 한, 참된 말의 교환은 일어날 수 없다.
좋은 교육은 교사와 학생 모두를 주체로 내세운다. 그들에게는 쌓아두어야 할 지식이 아닌 함께 풀어야 할 문제만 있다. 프레이리는 이 것을 ‘문제제기식’ 교육이라 불렀다. 그들은 공동의 성찰과 행동을 통해 문제를 이해하고 현실을 새롭게 창조한다.
누구를 ‘위해서’라는 말은 사라지고 ‘함께’라는 말만 남는다. 이 것이 대화이다. 진정한 대화는 공동의 성찰과 행동을 통해 서로를 변화시키고 서로가 처해 있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좋은 정치도 마찬가지다. ‘누구를 위한’ 혁명 또는 정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혁명 또는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학벌위주의 사회, 강자만 살려두는 무한경쟁체제, 교사의 일방적인 지식전달 구조,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잘못된 신념체제 등은 지금도 여전한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페다고지'는 우리에게 ‘희망의 교육학’으로 다가온다. 발간된 지 30년도 더 된 책에서 여전히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게 슬프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