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5교시 국어생활 수업 시간이었다. '대중 매체와 언어 생활'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라 전날 학생들에게 미리 과제를 제시했었다.
"지난 시간에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대중 매체를 통해 우리말이 어떻게 오염되어가고 있나 그 사례들을 조사해 오라고 했었죠?" "네~." "자, 그럼 숙제를 안 해온 학생들은 손들어봐요."
그러자 한 학생이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나는 몹시 화가 나서 말했다.
"숙제를 안 해오면 분명히 손바닥을 맞기로 했었죠? 자, 손바닥 내세요."
그러자 그 학생은 상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부스럭거리며 꺼내더니 살그머니 나에게 내밀었다. 초코파이 한 개였다. 뇌물을 드릴 테니 제발 한번만 용서해 달라는 의미가 분명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더욱 화가 난 표정으로 회초리까지 휘두르며 큰소리로 "이게 뭐야?"라며 소리쳤다. 순간 아이들을 바라보니 겁먹은 표정이 역력했다.
"한창 배우는 학생 녀석이, 벌써부터 선생님께 뇌물을 바치고, 자기의 잘못을 용서받을 생각을 하다니, (여기서 약간 침묵을 했다가) 이런 녀석은 정말 귀여워~"
선생님이 어떤 무서운 말을 할까 긴장하며 듣고 있던 학생들은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순식간에 책상을 치며 뒤집어졌다. 선생님의 말이 자기들이 예상했던 것에서 완전히 빗나갔기 때문에 그만 와~ 하고 웃음보가 터진 것이다.
지루하고 졸립고 따분하기 짝이 없던 5교시 수업 시간이, 이 말 한 마디로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바야흐로 춘곤증이 찾아오는 계절이다. 졸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쓰는 우리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들이 잠시 개그맨이 되어보는 것을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