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는가?” 이 질문은 늘 필자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파문을 일으킨다. 지난 세월, 중등교육 현장에서 수십 년을 보내며 숱하게 남의 글을 읽기만 했지 직접 작성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중견 교사와 관리자의 위치에 오르면서부터는 타인의 글을 읽으며 동시에 조금씩 교육활동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2017년에 이르러서 중고등학교 관리자(교감, 교장)에 명단을 올리면서 본격적으로 교육칼럼을 중심으로 에세이, 수필, 현실 비평, 교육 연구 등 글쓰기에 도전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제는 현직에서 은퇴했지만 여전히 이 물음 앞에 더욱 겸허한 자세로 사유를 하면서 글 쓰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지 생각을 기록하는 행위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교육자로서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이며, 교육자의 사명감을 다시 새기는 길이다. 1980년대 중반, 청운의 꿈을 안고 입문한 교직은 그 후 시대의 변화와 함께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항상 변화와 도전의 한복판에 있었다. 중견 교사가 되면서 조금씩 더 강한 책무성을 느꼈고 학교관리자가 되어서는 학교의 교육활동 중심에서 직접 교육의 방향과 비전을 공유하고, 구성원의 마음을 모으며, 때로는 묵묵히 감정을 제
새 학기, 교실 문을 열면 늘 시선이 머무는 아이가 있습니다.교실의 공기가 아무리 따뜻해져도 끝내 마스크를 벗지 않는 아이.말을 건네면 돌아오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무거운 정적이고,눈을 맞추려 하면 아이의 시선은 바닥으로 조용히 무너집니다. 일주일에 세 번, 과학 전담 교사로서 마주하는 시간.그 앞에 서 있을 때면 저는 종종 ‘대화가 닿지 않는 거대한 벽’ 앞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이랑… 아주 조금만 이야기해 볼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건넨 청에 아이는겨우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하지만 다음 시간도, 그다음 시간도 아이의 입술은 끝내 열리지 않습니다.편지로라도 마음을 전해보자고 제안했지만, 돌아온 종이는 여전히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였습니다.그 침묵은 단순한 거부가 아니라, 누구도 쉽게 닿을 수 없는 방식으로 닫힌 아이만의 세계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느 순간, 제 안의 질문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왜 말을 하지 않을까?”가 아니라,“왜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까?”극도의 불안을 느낄 때, 아이의 뇌에서는 위협을 감지한 편도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며 몸과 언어를 동시에 멈추게 하는 ‘얼어붙음(Freezing)’ 반응
유채꽃 물결 사이로 속살대는 아이들 웃음소리 연둣빛으로 피어 하늘로 오른다. 그 웃음은 옥빛 바다에 내려앉아 윤슬에 물들어 다시 은빛 나비처럼 팔랑거린다. 다랭이마을 걷는 아이들은 옥색 바다를 너무 예쁘다고 한다. 다랭이마을 바다, 동해는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바다라면 남해는 부드럽게 넘실대며 안아주는 바다이다. 하지만 가천마을 바다는 태평양을 마주 보고 있어 태풍의 진로에 들어 풍랑이 높은 날이 많다. 하루 전날 비가 내렸다. 아이들 눈빛은 날씨가 좋아지길 비는 모양이었다. 그 바람을 들어준 듯 아침 날씨는 참 미쁘다. 다랭이마을로 가는 길 차창 밖 빈 논밭에는 연둣빛이 가득하고 벚나무 들이 꽃망울을 활짝 터뜨린다. 찻길에서 내려다뵈는 108계단 680여 개 이상의 다랭이 논에는 유채와 마늘이 자라고 있다. 연둣빛 들녘, 코발트빛 하늘, 옥색 바다와 대비되는 유채꽃밭은 유난히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리고 해풍이 불 때마다 윤기를 자르르 발하며 일렁이는 마늘밭의 물결이 봄이 한창임을 알린다. ‘유채꽃 향기가 너무 강해요’란 한 아이의 말에 현기증이 일어난다. 다랭이마을 전망대에서 조망하는 층층 겹친 곡선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말을 쉽게 하기에는 너무
식목일인 4월 5일 오전, 수원 칠보산 층층나무 쉼터는 분홍빛 진달래와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제5회 칠보산 진달래맞이 봄소풍이 성황리에 열리며, 봄의 절정을 알리는 따뜻한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 행사는 ‘칠보산을 사랑하는 모임(이하 약칭 칠사모,회장 정삼훈)’이 주관했으며, 권선구청장을 비롯한 지역 인사들과 주민자치회장, 단체장, 시의원 및 예비후보자, 그리고 시민 등산객 등 150여 명이 참석해 자연 속 화합의 시간을 함께했다. 행사의 시작은 한국전통예술단 쿵따쿵(단장 김제현)의 길놀이였다. 무학사 산사에서 출발한 10∼70대까지로 구성된 풍물패 19명의 흥겨운 장단은 칠보산 자락을 타고 흐르며 봄소풍의 문을 힘차게 열었다. 층층나무 쉼터에 도착한 공연단은 신명나는 사물놀이를 선보였고, 참석자들은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자연과 전통이 어우러진 이 장면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개회식 진행은 선영미 사무국장이 맡았다. 정삼훈 회장은 인사말에서 “칠보산을 찾아주신 시민 여러분과 칠보산을 잘 가꾸어 주신 칠사모 회원께 감사드린다"며 "오늘 정겹게 대화를 나누시고 칠사모에서 준비한 음식도 드시면서 산행의 더욱 뜻깊은 시간
입춘이 지나고 열흘 남짓. 여전히 바람 끝은 차갑지만, 계절은 분명히 방향을 틀었다. 겨울과 봄이 맞닿은 길목에서 수원 구운동과 율천동에 위치한 일월호수공원을 찾았다. ‘내가 찾은 일월호수공원의 봄’을 취재 기록하기 위해서다. 아침 햇살이 호수 수면 위로 길게 내려앉아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가장자리까지 얼어붙어 있던 호수는 어느새 얼음을 풀고 잔잔한 물결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잔물결에 햇살이 비치니 눈이 부시다. 이게 바로 윤슬이다. 계절의 변화는 요란하지 않지만, 이렇게 분명하다. 얼음이 녹은 자리마다 봄이 스며들고 있었다. 호수 위에서는 물새들이 분주했다. 검은 몸에 흰 이마가 또렷한 물닭은 유유히 물살을 가르며 헤엄쳤고, 흰 뺨이 인상적인 흰빰검둥오리는 짝을 지어 움직였다. 멀리서는 우아한 자태의 고니가 목을 길게 뻗은 채 물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잠수와 부상을 반복하는 뿔논병아리의 재빠른 움직임, 날개를 활짝 펴 말리는 가마우지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겨울 철새와 텃새가 어우러진 이 풍경은 계절의 전환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준다. 새들의 날갯짓과 울음소리는 아직 쌀쌀한 공기 속에서도 봄의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고니 10여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시 향수 중 일부분이다. 이 시를 보면 고향에 대한 평화로운 그리움이 가득하며 그곳은 영원한 우리의 본향임을 들려준다. 더구나 설이 다가오니 더 살아 오른다. 우리의 삶과 고향, 시간은 가고 흐르지만 기억은 쌓인다. 그 잃어버린 시간의 기억을 추억이라고도 한다. 향수(鄕愁)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추억이자 그리움이다. 상처나 슬픔조차도 지나간 것이기에 아름답다. 생의 근원에 대한 동경을 일깨워주는 고향, 마음의 고향은 늘 그렇게 잃어버린 시간에 자리하고, 향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게 한다. 설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명절을 묻는다면 ‘추석’ 혹은 ‘설날’이라고 답한다. 설날은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하다. 여기서 설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왜 설날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됐을까? 그리고 ‘까치 까치설날은 왜 어저께일까?’이다. 설날은 음력 1월 1일로, 명칭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정확하게 밝혀진 건 없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설의 용어가 과거에는 나이를 헤아리는 말로
“우리의 시간을, 우리의 언어로 기록하다” 문학은 언제나 삶의 깊은 곳에서 태어난다. 교단에서 40여 년을 보낸 6명과 여성시인 한 명이 다시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었다. 경기도 구리·남양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미니작가회가 결성 1년 만에 문예동인지 『시간의 서재』를 창간하며, 오는 2월 9일 오전 11시, 퇴계원 사무실에서 출판기념 북콘서트를 연다. 미니작가회 회장 신재옥(71. 전 구리 인창초 교장) 작가는 “여러 작가님들과 문예동인지를 우리 손으로 창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며 “특히 6080세대, 교직을 마친 작가들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출간 소감을 전했다. 미니작가회의 출발은 문학 활동을 일찍 시작한 교직선배의 권유에서 시작됐다. 이행재(85. 전 구리 교문초 교장) 작가의 제안으로 황정주(80) 작가와 신재옥작가가 문학적 인연을 맺었고, 구리에서 문학 이야기를 나누며 ‘미니문학회’라는 이름으로 소규모 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뜻을 같이하는 작가들이 합류하며 현재의 미니작가회로 성장했다. 회원 대부분은 구리·남양주 지역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던 교원 출신이다. 한국문인협회 남양주시지부장을 역임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