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초·중등 교육 현장에서 39년을 보낸 뒤 은퇴한 지 10년. 그러나 리포터의 하루는 여전히 분주하다. 교단에서 내려온 자리에 멈춤은 없었다. 포크댄스 강사로 무대에 오르고, 시민기자와 한국교육신문 리포터로 펜을 들었으며, 문학 동아리의 일원으로 다시 배우고 쓰는 삶을 살았다. ‘제2인생’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2025년은 새 도전과 성취로 빛난 한 해였다. 그 기록을 ‘나의 5대 뉴스’로 정리해 본다. ① 포즐사, 공식 무대에 12차례 서다—춤으로 잇는 신중년의 연대 신중년 포크댄스 동아리 포즐사(포크댄스를 즐기는 사람들)는 2025년 한 해 동안 공식 무대에 12차례 올랐다. 어린이날 일월수목원에서 열린 ‘가족·친구·이웃과 함께하는 포크댄스 추억 만들기’를 시작으로, 경기도지사기 생활체육 체조대회 장려상 수상, 권선구 댄스 경연대회 출전, 수원시 주민자치 박람회와 새빛 ‘시민의 메아리’ 거리공연, 성당과 지역 축제, 평생학습축제와 시니어합창단 정기연주회 특별출연까지 무대는 다양했고 박수는 따뜻했다.춤은 세대를 잇고, 손을 잡게 했다. 포즐사의 무대는 ‘함께’라는 단어를 몸으로 증명한 시간들이었다. ② 미니작가회 결성—작품집 『시간의 서
“미래는 반드시 정보사회가 될 것이다.” 40여 년 전, 막 컴퓨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던 시기. 2년제 교대를 졸업한 한 청년은 교육 현장의 변화를 직감했다. 전공학과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대, 그는 전자공학과 교육공학을 공부하며 미래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 예견은 정확했다. 교육부와 모교가 컴퓨터교육의 필요성을 인지하던 순간, 김영기 교수는 시대가 요구한 교육자이자 개척자로서 모교인 경인교대 강단에 서게 되었다. 김 교수의 업적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초등 실과교과에서 컴퓨터교육을 처음으로 도입하고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를 집필한 일이다.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게 누리는 초등 정보교육이지만, 당시에는 ‘전혀 새로운 세계’를 학교 안으로 들여놓는 일이었다. 김 교수는 교육과정의 빈틈을 스스로 채우며 ‘초등 컴퓨터교육의 기초’를 구축했다. 그는 또한 한국정보교육학회를 창립해 초대 및 2대 회장을 맡으며 국내 정보교육의 전문성 확립에 큰 역할을 했다. 국제무대에서도 활발히 움직였다. 2002 ICCE 국제학술대회를 삼성동 COEX로 유치해 조직위원장으로서 성공적 개최를 이끈 것은 한국 정보교육의 위상을 높인 상징적 사건으로 꼽힌다. 교육
늦가을이 저물어 초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동네 한 바퀴 오동마을 주변 논 밭두렁 따라 구절초가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듯한 풍경으로 어우러져 있다. 코스모스처럼 화려하지도 국화처럼 풍성하지도 않은 소박한 꽃 잔치다. 어릴 적 이맘때면 그저 들판이나 논밭 언덕에 핀 하얀 들국화라고 생각하며 지나친 꽃이다. 하지만 식물도감에 들국화라는 꽃은 없다. 들국화는 말 그대로 들에서 피는 국화란 뜻이다. 통상 우리가 들국화라고 부르는 꽃은 구절초와 쑥부쟁이, 해국, 감국, 산국 등이 포함된다. 구절초의 이야기는 무엇을 품고 있을까? 구절초는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모정이라는 깊은 마음과, 꿋꿋하게 가을 서리를 이겨내는 강인함 속에 숨겨진 순수한 약속이 숨겨져 있다. 어찌하든 간에 구절초의 가장 대표적인 꽃말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 즉 ‘모정(母情)’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구절초는 예로부터 여성들에게 특히 좋은 약초로 널리 알려져 왔다. 몸이 차가운 딸이나 며느리를 위해 어머니들은 가을이면 이 꽃을 말려 따뜻한 차를 끓여주시곤 했다. 그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향기와 함께 묵묵히 들판을 지키는 그 모습이, 늘 자식 뒤에서
백혈병과 싸우면서도 ‘수업일지’처럼 12개월간 삶을 기록한 아내 박정안 선생과 아내가 세상 떠나기 전 3개월간 이어 쓴 일기를 8년 만에 책으로 펴낸 우장문(64세, 전 숙지고 교사) 남편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도 내가 아파서 다행이야” 2017년 겨울, 서울성모병원 응급실. 누군가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병이…”라며 울부짖던 그 순간, 옆 침상에서 조용히 들려온 한마디가 있었다. “그래도 내가 아파서 다행이야.” 그 말을 남긴 이는 고(故) 박정안 교사였다. 그리고 8년 뒤, 그 말을 책 제목으로 삼아 세상에 내놓은 사람은 남편 우장문 교사다. 책 『내가 아파서 다행이야』는 한 교사의 마지막 12개월을 담은 투병일기이자, 그 곁을 지킨 남편이 이어서 쓴 3개월의 기록이다. 교사로, 엄마로, 한 인간으로 살아낸 일상의 치열함이 오롯이 담겨 있다. “아내가 쓴 줄도 몰랐던 일기였습니다.” 우 교사는 아내의 일기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기억을 또렷이 떠올렸다. “입원 후에 무료할까 봐 ‘완쾌되면 책으로 내자’고 제안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아내는 이미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고 있었더군요. 그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교사의 마지막 수업일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의 태양이 쏟아내는 열기는 대지를 불사를 기세다. 냉방기 아래서 힘들고도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바로 사백 쪽이 넘은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을 보면서다. 새의 선물은 무엇일까? 실체는 드러나지 않고 단지 열두 살에 삶을 완성한 진희만 보일 뿐이었다. 이 책은 스물두 개의 소제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제목끼리는 복선을 주어 다음 소제목과 이어지며 책장을 넘기게 한다. 그래서 한 번 읽기 시작하였다면 손에서 놓기가 어렵다. 특히 감성적인 묘사와 비유의 멋진 부분이 매력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 진희의 눈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려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열두 살에 삶을 완성한 애 어른 진희가 보는 세상 사람의 삶과 사랑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붙인다. 그것은 1969년 한 해와 1995년의 모습이 불러일으키는 노스텔지어다. 이 노스텔지어는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MZ세대들에겐 느껴보기 힘들 것이다. 읽는 내내 지금의 나는 유년이 이어져 온 삶이므로 다시금 그 시절을 반추해 보며 웃어보는 것이었다. 펜팔, 선데이서울,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노래, 더러운 차부(터미널), 혼식 검사, 띠기 장수(달고나),
22일 수요일, 하늘빛이 유난히 맑았다. 미니작가회 회원 여섯 명은 오전 9시 반, 퇴계원역에서 만나 경춘선 열차에 올랐다. 익숙한 노선이지만, 오늘은 문학동지들과 함께 가는 길이라설레고 새롭게 보인다. 열차가 출발하자 창밖으로 금곡, 천마산, 마석역이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오래전 금곡중교단에서 마주하던 아이들, 남양주교육지원청에서의 동료 직원들, 그 시절의 얼굴들과 추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의 젊음과 열정이 경춘선의 선로 위에서 다시 반짝이는 듯했다. 문학이란 결국 ‘잊혀진 추억 속시간의 서랍을 언어로 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유정의 마을, 생강나무 향기로 피어나다 10시 반, 김유정역에서 문학촌으로 향하는 길가에는 노란 잎을 단 생강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생강나무 특유의 은근한 향이 코끝을 간지르는 것 같았다. 문학촌 이인자 해설사는 우리를 맞으며 “이곳에서는 생강나무가 곧 김유정의 ‘동백꽃’이에요. 김유정이 그린 꽃이 사실은 이 나무랍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소설 속 ‘동백꽃’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활짝 피어났다.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냄새에 땅이
파란 가을 하늘이 높아가고 있다. 가을 색의 대표는 이맘쯤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연 겨자색 물결 볏논이다. 조생종 벼들은 이미 수확을 마치고 빈 논 벼 그루터기에는 새잎이 자라고 있다. 제법 튼실한 대봉감이 붉어지는 볼로 풀숲에 툭 떨어져 있다. 돼지 감자꽃이 노랗게 하늘거리고 황금빛 들판이 점점 더 무르익어가는 늦은 오후이다. 저수지 둑길 따라 바람에 흩날리는 햇살이 눈 부신 억새꽃 넘어 가을로 오고 있다. 추석이 코 앞이다. 오일 장날은 햇 오곡과 백과가 여문 가을과 추석 냄새로 가득하다. 마음 바쁜 어르신은 벌써 추석장 보기에 미소가 가득하다. 추석 하면 뭐가 떠오를까? 고된 일상을 뒤로하고 가족들과 서로 만나 애틋한 정을 나누는 모습, 귀성객과 귀성 차량 행렬로 대이동 물결이 방송을 탄다. 그리고 조용하던 시골 동네, 적막강산이던 시골집이 떠들썩하고 헤어졌던 가족과 친지, 동창들과 수다스러운 만남이 설레는 기분 좋은 날이다. 지나면 그 시간은 그리움이 따라가고 애틋함과 함께 추억의 책갈피로 남겨져 가슴이 깨질 듯 슬픔이 더 큰 것 같다. 추석 하면 떠오르는 냄새가 있다. 잘 익은 과일의 달큰함과 구수한 떡 냄새, 비릿한 조기 냄새에 시장을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