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개교기념일입니다. 아이들이 오지 않는 날이니 다른 날보다 느긋한 마음으로 출근을 하니,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내 발길을 잡아 끌었습니다. 강진읍에서 마량으로 향하는 길은 바다를 배경으로 벚꽃이 팝콘 터지듯 와르르 몰려 나왔습니다.
어렵게 보낸 3월, 이제야 꽃들이 거기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감동없이 바쁘게 보내버린 시간이 보였습니다. 낯설음을 적응으로 바꿔가는 내 몸부림만큼 힘들었을 아이들이 벚꽃 속에서 웃으며 달려옵니다.
그림마다 '선생님 사랑해요'를 써주던 고은이는 내게서 엄마의 체취를 그리는 지, 늘 내 곁을 맴돌며 서성거렸습니다. 국어 시간에 장래 희망을 발표할 때에도 '좋은 엄마'가 꿈이라는 아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안아주고 말았습니다.
"선생님, 우리 엄마는 가방을 싸가지고 나가버렸어요. 나도 가방 싸 가지고 나갈래요."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 아이에게," 안 돼! 너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어!"라고 답해 준 적이 있었는데 그 아이가 그걸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마워서 나도 모르게 안아 준 것입니다.
한참 엄마 시랑이 절실한 1학년 아이에게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것임을 생각하며 그 아이에게서 내 유년을 다시 봅니다. 새 어머니를 엄마라 부르는데 익숙하지 못했던 나는 초등학교 6년 내내 손을 들고 발표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만큼 자신감이 없는 아이였으니까요.
아이는 어머니의 그늘만큼, 어버이의 눈길만큼 자란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우리 고은이가 보여주는 불안정한 생활 모습은 결코 그 아이 탓이 아닙니다. 자기 물건에 애정을 갖지 못하고 함부로 하는 행동, 친구들과 자주 다투고 금방 울어버리는 일, 글씨를 아무렇게나 쓰는 일까지도 모성 결핍에서 오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울 때마다 관심을 보이기보다는 바람직한 행동에 칭찬을 하고 반응해 주며 관심을 표현하기로 했더니 울다가도 내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으니 차츰 우는 행동을 줄이는 영리한 녀석입니다. 엄마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그 아이가 세상을 보는 안경이 밝은 색이기를 소망하며 조금씩 마음을 다잡아 주는 일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상처를 간직한 아이들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면 과도하게 예민한 아이이거나 꼭꼭 숨기고 혼자 아파하거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의 폭이 유별납니다. 또는 아이답지 않게 체념하는 말투를 보이기도 합니다. 심한 욕설조차 아무렇지 않게 내뱉기도 합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은 세상이지만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은 가난했던 시절보다 상상이상으로 많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과격한 아이들은 그 방법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입니다. 과격한 언어 사용이나 일탈 행동 뒤에 숨겨진, 사랑을 갈구하는 애정의 욕구가 그만큼 크다는 표현임을 아는 데 한 달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얘들아, 내일은 학교 생일이라 학교에 오지 않고 쉬면서 학교를 위해 무엇을 할까 생각해 보는 날이야." 했더니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교실 위를 보고 활짝 웃으며, "학교야, 축하해!"를 금방 날리던 하늘이처럼 우리 아이들이 모두 그렇게 밝고 맑은 아이들이라고 믿습니다.
공부 시간에 천방지축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아이들을 말리다 못해 손길이만한 막대기로 겁을 준다며 엉덩이를 작게 때린다는 것이 잘못되어 손가락을 맞은 강이에게 아프게 해서 미안하고 사과했더니, 밖에 나가지 않고 나를 위해 그림을 그려주던 아이에게 한참이나 미안했던 어제였습니다.
교직경력이 결코 짧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기 감정을 삭히지 못하고 때릴 곳도 없는 그 작은 아이의 연약한 손가락을 아프게 한 못난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내 마음 안에 아이들을 다 끌어안지 못해서 나오는 내 행동을 '사랑의 매'라고 할 수 없음을 나 자신이 먼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폭력의 시작이 바로 내 손에서 시작되는 악순환의 고리임을!
아직도 아이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아이들은 바닷가 정자에 잠시 앉았다 가는 나그네이기도 하고 나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나는 늘 그들이 편히 앉아 쉴 수 있도록, 마음 놓고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깔끔하게 단장을 해야 함을 생각합니다. 그것이 그들과 맺은 무언의 약속이며 천명이기 때문입니다.
마량초등학교가, 내 교실이, "학교야, 축하해!" 멘트를 순간적으로 날리는 예쁜 우리 반 아이들이 편안하게 자랄 수 있는 쉼터였으면 참 좋겠습니다. 나의 주인이기도 하고 나그네이기도 한 꼬마 손님들이 벚꽃처럼 환하게 웃는 교실을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