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축제 월드컵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동시에 열린 적이 2002년이다. 그러고 보니 온 국민이 붉은 티셔츠를 입은 채 하나가 되어 전 세계에 우리의 위상을 떨쳤던 때가 벌써 4년 전이다. 아이들이 한일 월드컵만큼이나 기다리고 좋아하는 게 꿈나무 동아리축구대회다.
축구 국가 대표팀간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TV나 라디오의 해설자들이 우리나라의 축구는 뿌리가 없다고 얘기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축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축구를 아는 사람들이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어린이나 부모들이 자생적으로 클럽을 조직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상급 기관에서 지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팀을 운영하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다른 나라보다 축구팀이나 선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2002 한일월드컵을 전후해 생긴 동아리축구대회만은 다르다. 골대의 규격이나 경기장의 넓이도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공간에 맞게 작다. 선수의 구성도 4학년은 네 명, 5학년 다섯 명, 6학년은 여섯 명으로 학교에서 팀을 구성하느라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유니폼을 입지 않아도, 축구화를 신지 않아도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다. 어느 학교나 운동장에서 공차는 것을 즐기는 아이들은 몇 명 있기 마련이니 그 아이들이 주인공이면 된다.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 코칭스태프의 과학적인 지도력,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내준 애정이었다는 것을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 되며 마음을 맞추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
교육감기 꿈나무 동아리축구 청원군(교육장 신도섭) 대표 선발대회에 출전하는 아이들을 며칠간 지도했다. 짧은 기간이었고 몇 번 연습도 못했지만 아이들은 대회날짜를 기다렸다. 어쩌면 내가 더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벌써 오래 전이지만 나는 정식 축구선수들을 지도했던 경험이 있다. 또 축구라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아는 게 많다고 자부를 한다. 그래서 4,5학년 2년 동안 동아리축구대회에서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는 아이들에게 열심히 연습하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하면서 자신감을 키워주고 싶어 5월 1일 아침 일찍 학교로 향했다.
결과는 내 예상대로였다. 우리 학교 아이들이 두 경기나 이기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 상대는 작년에 내가 근무했던 학교였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내가 담임을 했거나 나에게 배운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정정당당히 싸워야 하는 게 승부의 세계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했다. 어떻든 불과 2개월 전에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지금 현재는 상대편 선수였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다. 부질없이 나는 속으로 한 번만 더 이기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렸다. 하지만 내 바람과 달리 두 번의 승리를 맛본 아이들이 자신감을 키우기는커녕 준결승 상대에게 작년에 0-6으로 졌다면서 불안해했다.
1년이라는 기간이면 세상이 바꿔진다며 다독였지만 아이들은 미리 겁을 먹고 불안해했다. 나와 같이 운동지도를 많이 해본 사람들은 안다. 시합 징크스를 깬다는 게 생각같이 만만하지 않다. 이후는 불운의 연속이었다.
심판의 휘슬이 울리고 1분도 되기 전에 우리 선수가 슛한 볼이 골대를 맞고 나왔다. 수비들도 배운 대로 하지 못하면서 골을 먹었다. 하나로는 부족한지 또 슛한 볼이 골대를 맞췄다. 결국 0-2로 패했다.
아이들은 졌다고 풀이 죽었다. 경기는 누군가 이기게 되어 있다. 물론 패자도 있을 수밖에 없다. 승패의 결과보다는 과정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만족해하고, 최선을 다한 것에서 행복을 찾으면 된다.
아이들에게 자신감과 추억을 키워주고 옛 제자들까지 만났으니 나도 즐거운 하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