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순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연곡분교 4학년 이기운입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유치원에 다니던 유림이 입니다."
"아니, 어떻게 알고 전화를 헀니?"
"아, 선생님이 주고 가신 책이 있잖아요. 거기 보고 알 수 있었어요."
요즈음에도 나는 가끔 작년에 가르친 연곡분교 아이들의 전화를 받곤 한다. 전교생이 한 가족처럼 살았으니 직접 가르친 아이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 서로를 좋아하고 사랑하며 살았었다. 그 기록들을 책으로 출간하여 헤어지던 날 주고 온 덕분에 아이들과 나의 연결고리는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2005년 12월 20일 출간한 '가난한 내 그릇')
아이들도 자신들의 이야기와 학교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실려 있어서 참 좋아했었다. 수행평가라는 형식을 거치며 자신들의 기록을 남기기도 하고 학교 문집의 형태로, 개인 글모음의 모습으로 자기 기록을 어느만큼 소유하고 있지만 객관적인 눈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남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200여일 동안 함께 살다가 헤어지는 자리에서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판하여 선물하는 것이라고 깨닫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6학년 아이들에게는 날마다 일기를 쓰라고 하면 좀 맹랑한 아이들은
"선생님도 일기를 쓰세요?
"그럼, 내 일기를 보여줄까? "
그리고는 컴퓨터 화면을 통해서, 복사를 해서 나눠주면 반응이 달라졌다. 자신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때로는 즐거운 내용이기도 하고 마음 아파하는 내용을 받으면 숙연해지기도 하고 자세가 바뀌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말로 하는 것보다 책속에 등장하는 자신들의 이름을 대하면 학교 생활도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은 선생님이 자신의 생활에 관심이 많다는 것, 좋은 일들은 기록해 줄 거라는 암묵적인 약속을 믿으며 나름대로 노력하곤 했다. 혹시라도 사진을 찍으면,
"선생님, 책에 쓰시려고 그러세요?"
"그럼, 너의 행동과 말이 참 예뻐서 기록하고 싶구나."
그렇게 해서 탄생된 다섯번 째 교단일기가 이번에 책으로 묶여 나왔다. 두고온 연곡분교 아이들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어제 일처럼 또렷한 그날들의 기록과 아이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내 분신(너에게 가는 길)을 보며 벌써부터 여름방학을 기다린다. 여름방학이 되면 연곡분교 아이들에게 이 책을 들고 찾아가서 그리움을 풀 생각이 들어서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가 육아일기를 남기듯, 나와 함께 숨쉰 아이들의 체취를 담아 이별의식을 치르는 날에 선물하는 즐거움을 상상하며 나는 오늘도 부지런히 아이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 부스러기들을 줍기 위해 자판 앞에 앉는다. 꾸지람 앞에서 눈물 흘리던 아이도 글속에 나타난 내 마음을 먼 후일에 읽고 그를 사랑하는 내 염려를 잊지 않고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으리라.
벌써 83일 째 부대끼며 살아온 우리 1학년 아이들의 크는 모습이 눈에 띄게 보이는 요즈음. 아이들이 보여주는 긍정적인 변화를 기록하는 일이 바빠졌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19명이 밥을 잘 먹는 예쁜 모습, 색칠을 참 잘 해서 기특하고 아침독서 시간이면 발소리도 안 내고 들어오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그렇게 힘들었던 3, 4월 그들에게 공들인 시간들이 이렇게 싹이 터서 꽃대를 올리며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오십견으로 어깨가 벌어질 듯 아파도 내 곁에 아이들이 있는 동안 나는 기록하는 이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 글의 독자는 우리 아이들이다. 내 책은 우리 아이들에게 보내는 연서이다. 그러므로 '기록을 남기는 교사'로서 아이들이 일기를 쓰듯, 나도 그들의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교단에 머무는 동안 내 마음의 숙제를 다해서 아이들 가슴속에 남고 싶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