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 보면 혁신(革新) [명사][하다형 타동사][되다형 자동사] 제도나 방법, 조직이나풍습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 ↔보수(保守) 라고 나와 있다.
요즘 우리혁신이라는 말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은연중에 교사집단(교사집단? 이 말에도 상당한 거부감이 있으나 차치하고)를 향해 그 화살표의 머리가 겨누어 지고 있다. 그럼 그 동안 교사집단은 보수집단이었단 말인가?
그리고 혁신의 어원 그대로 무엇을 완전히 뒤바꾸어서 새롭게 한다는 말속에 얼마나 큰 위험 부담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안다면 혁신이란 말을 그렇게 아무곳에나 함부로 쓰지는 못할 것이다.
혁신은 그야말고 고려말 이조초처럼 새로운 정권을 세우고 새나라를 개국하는 때에 제도적으로 완전히 뒤바뀐 세상에서나 쓸 수 있는 말이다. 물론 내면적 자기 혁신을 하라는 말인 줄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게 아니니 ‘자기 혁신을 하시오’ 한다.
며칠 전에 교사들을 상대로 한 ‘자기주도적 변화와 혁신’이란 주제로 사이버 연수를 하였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부분도 있고 새겨둬야 할 말도 있었다. 하지만 연수내용이 처음부터 교사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내용이 아니고 회사의 셀러리맨을 상대로 하는 내용이어서 다소 거리감이 느껴졌다. 기왕에 연수를 시킬려면 20시간이나 컴퓨터에 매달려 해야할 연수라면 좀더 알차게 편성 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 되었다.
교사는 당장의 눈앞의 손익 분기점으로 개인의 능력이 평가되는 이익집단의 구성원이 아니다. 내가 처음에 교단에 들어서면서 가슴이 설레고 또 교단에 서 있는 오랫동안 보람과 행복을 느꼈던 이유는 당장의 이익을 추구해야하는 기업이 아니라 사람을 더구나 어린 아이들을 상대하고 그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줄수 있다는 것에 있었다.
기업은 이윤을 내지 못하면 그 존재의 가치가 없다. 그러나 학교는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다. 한알의 밀알을 심는 농부의 심정으로 정성을 다해 꿈을 심는 곳이다. 내가 뿌린 씨앗이 어느 아이의 가슴속에서 커다란 나무로 자랄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기쁨으로 교단에 선다. 왜냐하면 학교는 사람을 다루는 곳이고 그것은 봉사와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경제적 가치를 묻지 말아라. 우리에게 혁신을 요구하지 말아라. 차라리 우리에게 사랑과 봉사와 정성을 요구해라. 그 다음에 우리의 능력을 요구해라.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을 상대로 하는 사도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