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사랑나눔 아나바다’ 장터 개장을 하루 앞두고 고학년 학생 및 학부모들과 교직원들의 장터 꾸밈이 끝난 한가로운 오후다. 교장실에 5학년 여학생들 칠팔 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작년부터 체험을 통한 경제교육 및 바람직한 인성교육을 위한 아나바다 장터 운영을 교육과정화 하였다. 학생-학부모-교직원들로부터 수집한 불용물품을 저가로 판매하여 그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돕기 성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교장 선생님, 부탁이 있어요. 저 찜해 둔 것 있는데.”
“오 그래. 뭔데?”
“인라인 스케이트요. 내일은 우리 5학년부터 사게 해 주세요. 작년에 늦게 가서 사고 싶은 것을 못 샀단 말이에요.”
“전 많이 살래요. 그 돈으로 이웃돕기 하니까 많이 사도 괜찮을 것 같아요.”
물건을 전시하면서 보아 둔 물품을 꼭 사고 싶은데 학년별로 장터 이용시간을 배정하기 때문에 늦게 가면 못산다는 얘기다. 다른 때는 많이 사면 안 되겠지만 이웃돕기 성금으로 쓰니까 많이 사도 괜찮겠다는 얘기다.
“싸다고 아무것이나 사면 안 된다. 꼭 필요한 물건만을 사야 한다. 우리가 낸 물건값은 어려운 이웃돕기에 쓰니까 성금을 낸다는 마음으로 필요한 것을 사자.”
개장이 선언된 뒤 교장선생님의 장터 이용에 대한 훈화 말씀이다. 물자절약의 필요성,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물려주고 물려받아 쓰기 등 어린이들의 현명한 경제생활과 나 보다 더 어려운 이웃이 우리 주변에 많다는 것과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 중에 성금을 모으는 일의 필요성, 여럿이 어려운 한사람을 돕는 일은 어렵지 않다는 등의 말씀이 이어졌다.
흔히들 학교교육에서 인성교육을 가장 중요시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식이나 특기 적성 교육 등의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는 것들을 더 중시하고 있는 것 같다. 개성을 존중하고 개별화 교육에 최선을 다하며 한 줄 서기가 아닌 다양한 능력을 존중하는 시대이지만 결국 일류대학의 입시제도가 경쟁을 부추기고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인성교육을 등한시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인지도 모르겠다.
초등교육에서는 보다 바람직한 인성을 형성시키기 위한 다양한 체험활동을 교육과정화 하여 추진하고 있다. 교실 안에서 이론이나 교과서에만 의지하던 인성교육이 현장중심 체험중심으로 바뀐지도 꽤 오래 전이다.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교육과정이나 교육당국의 행정적 지시나 권유에 의한 교육활동에서 벗어나 지역사회나 학생, 교직원들의 특색에 알맞은 자율적인 학교 교육과정을 수립하여 교육을 수행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부여하여 정서 순화를 유도하고 감동을 주어 내면화 시킬 수 있는 학교교육과정을 수립 시행하고 있는 점은 참으로 다행이다.
초등학생들이 어리다고 과잉보호하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성인들이(교사나 부모) 생각하지 못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행동이 놀라울 정도로 번뜩인다. 복지시설 위문 봉사체험활동, 아나바다 장터 개장, 도시 체험, 어린이회를 통한 자율적인 활동 계획 등 연례적인 행사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행사의 질적 수준이 향상되고 있다.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직된 성인들은 그저 놀랄 수밖에 없다. 각종 교육활동에서 실제 주체가 되는 학생들의 활동이 대견스러울 뿐이다.
현장에서 직접 이루어지거나 체험할 수 있는 교육활동이야말로 감동을 받을 수 있고 미래 지향적이며 내면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릴 때의 경험은 일생을 사는 동안 아름다운 길일 수도 있고 가시밭길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