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인류의 삶을 변화시킨 상'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니는 노벨상이 올해로 101주년을 맞았다. 세월에 빛이 바랠 만도 하건만 노벨상은 여전히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자랑한다. 평생을 한 나라에 정착하지도, 결혼하지도 않았던 알프레드 노벨. 1896년 사망하면서 그가 남긴 유언은 막대한 유산을 다투던 친척들을 황망하게 만들었다. “인류에 최대의 공헌을 한 5분야의 사람들을 위해 상을 만들어라.”
1901년 제1회 수상자들의 상금은 당시 대학교수 평균연봉의 20배인 15만 크로네였다. 현재는 1천만 크로네(약 12억5000만원)로 올랐지만 화폐가치로 따지면 당시와 거의 비슷하다. 종교분야의 템플턴상을 빼고는 최대 상금이다. 이 엄청난 상금이 노벨상의 명성에 한몫 했음도 물론이다.
노벨상은 학계의 가장 큰 상인만큼 논란의 소지 또한 많았다. 6개 분야 중에서 평화상과 문학상이 가장 자주 도마에 오른다. '베트남 전의 주역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은 탔지만 간디는 못 탄 상', 평화상의 맹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중동, 북아일랜드 등 지구촌 곳곳의 분쟁에 연루된 사람들도 수상자의 반열에 올 라 평화상의 이름을 무색하게 했다. 평화상은 지난 100년 동안 16번이나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문학상으로 가면 ‘처칠이 탔지만 톨스토이는 못 탄 상’이라는 비판을 듣는다. 가장 위대한 작가들로 꼽히고 있는 브레히트, 카프카, 체 홉, 조이스 등은 물론 노르웨이인 입센도 상을 받지 못했다.
과학·경제 분야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장 심각한 것은 노벨위원회가 원하는 수준의 업적을 쌓은 경륜이 있는 노학자에게 상이 돌아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년퇴임상'이라는 소리도 있다. 학자들 사이에 ‘노벨상이 창조력의 죽음에 보내는 키스’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 많게는 수백 명이 참여하는 공동연구가 늘어나는 추세임에도 수상자를 최대 3명으로 제한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수 있다. 노벨상 중 평화상만 예외로 단체 수상을 인정한다. 물리학의 경우 이론물리학보다는 실험물리학, 경제학에선 실제가 아닌 경제이론에 상이 돌아간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밖에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수여된다는 점도개선해야 할 사항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은 여전히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세기가 노벨상으로 인해 변했던 것처럼 21세기 역시 노벨상의 영향권을 쉽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노벨상 타는 것이 꿈이에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계속 존재하는 한…. 올해의 노벨상 시상식 역시 예년과 같이 노벨의 기일(忌日)인 12월 10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