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앤과 쥬디가 한국에 오고싶다는 연락이 왔다. 매리앤은 미주리대학(University of Missouri at Saint-Louis)에서 원격교육으로 회계장부 정리를 가르치는 전문가이며, 쥬디는 미주리대학 정교수이다. 필자가 미주리대학에 있을 때 매우 친하게 지냈던 지인들이다. 매리앤과 쥬디는 필자를 보기 이전에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전혀 몰랐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교환교수로 거주하면서 매우 놀란 것 중의 하나가 이 지역에는 5000여명이나 되는 한국계 관련 사람들이 있는데도 필자가 만나는 미국 사람들은 한국을 너무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로타리클럽에서 필자에게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이 왔을 때 한국의 인사말, 위치, 역사, 언어, 음식과 풍습, 오늘날의 한국 등과 더불어 이 지역에서 생활하는 유학생, 연수생 소개와 유치원서부터 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연수생들이 연간 10조원이상을 학습비용, 연수비용, 생활비용을 해외에서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을 때 그들의 반응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 뿐 인가? 각 대학을 졸업하고 그 대학 발전기금차원에서 들이는 비용은 또 얼마인가.
우물안 개구리처럼 작은 곳에서 배우는 것보다는 크고 넓은 세상에서 배우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그 개인에게도, 또 그가 속한 집단에도 유익한 일이다. 하지만 한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는 여러 곳에 두루 있건만 한쪽 방향으로 너무 쏠리는 것은 아닌가? 유치원부터 대학, 대학원까지 이곳에서 보낸 아이들이 한국의 정신, 한국에 대한 개념이 있을 것인가? 한국은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싫든 좋든 미국을 들먹이지 않는 날이 없건만 정작 미국에서는 한국이라는 나라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그동안 한국이 자신을 알리는데 소홀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도 된다. 그간 학회 참석 등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는 동안 중국과 일본은 특히 일본은 여러 분야에 걸쳐 자신의 문화와 전통을 알리는데 그토록 열심인데 그에 비해 한국은 어떠했던가를 생각하면 선진국이든 저개발국가이든 한국에 대해 편견을 갖거나 단편적 지식을 가지고 전체를 예단하는 것에 째려보며 분노할 수 있는 자격은 크지 않다. 내 것을 내가 좋다고 알려야지, 남이 나서서 당신네들 것 참 좋다고 해주기를 바라는가?
매리앤은 한국에 오기 전에 예방주사를 얼마나 많이 맞아야 하는지를 물었다. 우리가 저개발국 오지를 연상하듯 매리앤이 한국을 그토록 후진국으로 알고있는가 싶어 은근히 화가나서 “한국은 발달된 나라이니 예방주사는 필요치 않다”고 대답을 해주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아무리 발달된 나라라고 할지라도 즉 우리가 미국이나 유럽을 갈 적에도 외국인이므로 저항력이 약한 부분이 있을 수 있고 그에 대한 대비로 예방주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 아무튼 매리앤은 네 대의 예방주사를 맞고 왔고, 몸이 좀 덜 튼튼한 쥬디는 무수히 많은 주사를 맞고 왔다고 내게 말을 해주었다.
한국에 오기 전날에 매리앤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였다고 하던데 필자는 무사하며, 한국은 안전한가를 묻는 전화를 걸어왔다. 아버님이 걱정이 되셔서 한국 여행을 재고하라고 하신단다. 사실 속이 조금 상했지만 걱정해야할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미사일 발사이후 별다른 이상 징후가 없으며, 한국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있는데 평상시와 다름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안심해도 된다고 답해주었다. 그러면서도 혹시 한국동란처럼 평상시처럼 지내고 있다가 느닷없이 새벽 4시에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피할 곳이나 있는가를 생각하였다. 전쟁이 시작되었다면 일반시민들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거짓을 외쳐댄다고 하더라도 정부의 방송만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안보불감증을 말하지만 지도자를 믿지 못하는 것만한 불안이 어디에 있겠는가? 수많은 최신 무기와 군사가 있다고 한들 그것이 안전을 담보하는가? 국민과 함께 살고 죽겠다는 호치민이라는 지도자를 가졌던 베트남의 역사를 생각해본다. 만일 우리가 지도자를 믿을 수 있다면 미국에 가서 미국 대통령에게 절을 하든 큰소리를 하든, 북한에 가서 절을 하든 큰 소리를 내든 그 모든 것을 다 ‘무슨 생각이 있으셔서 저런 행동을 하셨을 것이라’며 믿고 같이 행동해주었을 것이다.
쥬디의 가방을 보았을 때 필자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사탕, 과자, 막대형 치즈, 집에서 구운 빵, 초코렛, 잡지 등 자신의 집에서 일상생활에 사용했던 것을 조금조금씩 몽땅 싸가지고 왔다. 그러면서 한국여행 처음이라서 먹을 것이 맞지 않을까봐, 영어로 된 볼거리가 없을까봐 걱정을 많이 하였단다. 이 먹거리들은 여행내내 짐가방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다가 매리앤과 쥬디가 미국으로 떠나는 날 호텔에 모두 쌓아놓고 갔다.
사실 매리앤과 쥬디가 한국에 온다고 하는 날부터 걱정이 되었다. 적은 나이도 아닌데 혹시 병에 걸리면 어쩌나, 두 주일이나 되는 긴 여행 중에 더군다나 여자 세 명이 함께 다니다가 이 좋은 사이가 원수가 되면 어쩌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여자 세 사람은 긴 여행기간 동안 서로를 배려하며 오히려 더 찰떡궁합이 되어 잠시도 쉬지않고 웃고 떠든다고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다. 물론 서로 안맞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우에 쥬디는 가장 연장자로서 일의 순서를 찾아주었으며, 매리앤과 필자는 잘 따라주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 그리고 인연을 소중히 하는 마음, 싫거나 언쟎은 것이 있으면 서로에게 알리고, 그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헤어지던 날 공항에서 서로 붙들고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쥬디와 매리앤은 미국에 도착하여서 여독이 풀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잘 도착했노라는 도착인사를 하였으며, 필자는 한국에서 잘 지내다가 건강하게 집에 잘 들어갔음에 감사하다는 답례인사를 하였다.
7월 17일 저녁 비행기로 두 사람이 인천 공항에 도착하던 날 짐이 많을 것을 우려하여 필자의 절친한 친구인 이교수님은 호텔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필자는 호텔에서 예약해준 택시기사분과 함께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장장 16시간이나 되는 비행 끝에 매리앤은 멀미로 고생을 하여 안색이 좋지 않았으나 드디어 한국에 도착하였다는 안심과 필자를 만난 반가움으로 원기를 끌어모아 팔을 벌리고 달려왔으며, 쥬디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무지막지하게 많은 짐들을 끌고 높은 음색의 목소리로 ‘Hello' 를 연발하며 필자가 먼저 두 사람을 발견하여 ’쥬디, 쥬디‘하며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었다고 고맙다고 하였다. 짐이 많아 트렁크와 택시 앞 칸에 채곡채곡 짐을 잘 배열하여 넣고, 우리 세 사람은 뒷 칸에 앉아 왕수다를 시작하였다. 귀가 따가웠을 기사분께 뒤늦은 미안함의 인사를 보낸다.
아직 해가 남아있는 시각이라 바다 갯벌을 메워서 된 공항 주변을 창밖으로 보라고 일러주며, 돋보기를 코에 얹고 전자사전을 열심히 두드리며 설명을 해주었다. 설명하는 동안 날이 어두워지고 비가 내려 화제를 날씨로 돌려 이야기를 하고, 서울시내로 들어서서는 네온사인으로 불밝은 맥도날드, 편의점, 입체도로, 큰 빌딩들을 보며 시카고같다고 생각나는 대로 씩둑꺽둑 이야기 하는 동안 호텔에 도착하였다. 호텔로비에서 기다리던 이교수님과 서로 인사를 교환하고 예약된 방으로 가서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고 이교수님이 환영의 만찬(?)을 주변에 있는 음식점에서 하겠다고 하여서 씩씩한 우리 세 아줌마는 피곤함도 잊고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연 이태리 식당에서 쉬임없이 수다를 떨다가 12시가 다 되어서 호텔로 들어와 잠을 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