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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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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그래도 개학이 좋다"

방학이 끝나간다. 긴 것만 같던 방학이 벌써 끝나간다.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긴 방학이 얼마나 좋았는가! 그런데 개학날이 가까워진다.

늦잠을 잘 수 있어 좋고, 마음 놓고 놀 수 있어 좋고, 도시 또는 시골에 있는 친척집을 갈 수 있어 좋다. 녹음 짙은 푸른 숲속에서 귀청을 찢는 듯한 매미 울음소리가 경쾌하고, 눈에 띠는 이름 모를 곤충들이 신기하다. 시릴 정도로 차가운 시냇물에 발 담그고 물장구친다. 물에 풍덩 뛰어들어 잠수도 해본다. 잠수라고는 하지만 겨우 허리 굽혀 얼굴만 담근다. 깨끗한 물속 세상이 훤히 보인다. 피라미새끼가 보이고 돌멩이에 붙어 있는 다슬기가 보인다.

방학 때는 보통 외갓집에 많이 간다. 물론 큰집의 할머니 댁에도 간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반겨주는 사람이 할머니이고 할아버지이다. ‘내 새끼’ 왔다고 ‘내 강아지’ 왔다고 끌어안고 뽀뽀하고 머릴 쓰다듬어 주시고 맛있는 것 모두 먹이려고 온갖 정성 다 해주신다. 옥수수를 먹고 고구마를 먹고 참외와 복숭아와 수박을 먹는다. 닭백숙에 삼겹살에 시원한 주스를 먹는다. 수백 살 느티나무의 짙고 깊고 넓은 그늘 아래에서 모기와 더위를 쫓아주는 할머니의 부채바람이 선풍기 바람보다 시원하다. 세상에서 나를 최고의 손님으로 대해주시는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박물관이나 산업시설, 유적지나 문화재를 찾아서 견학하고 자세한 자료를 찾기도 하고, 보고 들은 사실과 느낌을 글로 정리하는 ‘체험학습보고서’를 작성한다. 사진을 붙이고 사인펜이나 형광펜을 이용하여 멋지게 꾸미고 장식하여 보고서를 만든다. 요구르트 빈병이나 빈 캔, 컵라면용기나 우유팩 등을 이용하여 로봇장난감을 만든다. 가족신문을 만들고 풍경화를 그리고 독후감을 쓰는 등 여러 가지 과제를 처리한다.

그런데 미루고 미루다가 쓰지 못한 일기가 걱정이다. 방학 시작하자마자 잘 쓰겠다고 다짐하고 며칠은 잘 썼는데 어느 사이에 작심삼일이 되어버려 쓰지 않은 날이 훨씬 더 많다. 일기장을 넘겨보니 난감하다. 그렇다고 그냥 말 수는 없다. ‘오늘부터 날마다 며칠 것을 써야지.’ 날짜와 요일은 맞출 수 있다. 날씨는 어떠했는지 알 수 없다. 기껏 예닐곱 줄 평소 한 일 중심으로 쓴다. 끝부분에는 꼭 느낀 점을 쓴다. ‘참 재미있었다.’ ‘정말 즐거운 하루였다.’ ‘너무 심심했다.’ 등으로 끝맺음을 한다. 엉터리 일기다. ‘선생님께서 보시면 한꺼번에 쓴 줄을 아실까?’ 걱정이 되지만 어쩔 수 없다.

방학이 끝나가니 좋기는 한데 걱정스럽기도 하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놀이동산에 갔던 일, 해수욕장이나 계곡에 갔던 일,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던 일, 현장학습을 다녀온 일, 친척 집에 갔던 일, 시골의 어린이들과 함께 놀던 일, 번쩍거리는 도시의 밤경치에 어리둥절했던 일, 멋진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던 일 등 자랑할 것을 생각하면 빨리 학교에 가고 싶은데 과제를 다 못했으니, 일기를 한꺼번에 썼으니, 그리기 숙제를 못했으니, 약속한 책을 다 못 읽었고 독후감을 다 못 썼으니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개학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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