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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시네마편지> 오아시스

사랑은 진정‘오아시스’인가


사랑은 불편합니다. 매혹, 혼란, 겹침, 파국, 그리고 망각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일련의 과정과 그 반복이 끔찍하다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망각만 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폐허가 된 마음의 산성 밭은 다시 사랑을 꿈꿉니다. 하지만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을 갈망하는 내게 사랑은 또다시 파국만을 선사할 뿐입니다.

베니스가 선택한 영화,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는 사랑 영화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영화를 보는 동안 마음은 내내 불편했습니다. 사랑을 불편하다고 느껴서? 아니, 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제 안에 들어 있는 숨기고 싶은 편견과 야비한 욕망을 영화가 자꾸 밖으로 끄집어내어 부끄럽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뇌성마비 장애인인 한공주(문소리 분)를 나라면,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돌발적인 사건이라고 애써 위안하려해도 장애인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홍종두(설경구 분)가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더군요. 장애인을 동등하게 대우하고 차별하지 않는 것과 장애인을 사랑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인데도, 왜 나는 부도덕하게 느껴지고 그 것으로 인해 불편해지는 것일까요. 그렇다고 홍종두라는 인간이 절대적 선인(善人)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는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망나니이며 전과자일 뿐인데….

"진정한 사랑은 집단의 동의 없이 사랑에 빠진, 결혼이 아닌, 번식의 목적성이 배제된 철저하게 반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은밀하게 살아가는 삶의 한 방식이다"라고 파스칼 키냐르는 '은밀한 생'에서 말했지요. '오아시스’는 그러한 사랑의 상징입니다. 사랑은 오아시스처럼 사회로부터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으니까요. 이창동 감독이 장애인과 전과자의 사랑을 설정한 것도 진정한 사랑의 비사회적인 속성을 좀더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들은 일상 속에서 마치 섬처럼 소외를 앓고 있으니까요. 종두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주는 사람들과 완전히 ‘격리’된 자신의 방에서….

이제 영화를 보며 느꼈던 불편함의 진정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도덕적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자리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마술 같은 사랑의 힘으로 그들의 상처받은 실존은 인간다운 위엄을 회복하게 되었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사랑의 외곽에서, 사랑의 대척점인 이 사회에서 불편하게 그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사랑해야 할 가족끼리도 아옹다옹 싸우고 적당히 속임수를 쓰며 이용할 수 있다면 이용하고, 그렇게 조금 더 안락(安樂)을 위해 달리며 여유를 얻으려면 더 많은 '재물'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한 진정한 사랑은 영원히 나를 외면할 테니까요.

나무그늘 아래서 잎새사이를 비추는 햇살의 모양을 가늠해보는 여유를 그들은 '사랑'으로 얻었습니다. ‘사막’같은 세상에서 사랑은 진정 '오아시스’인가요. 그 속엔 정말 생의 은밀한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요. 아니면 사랑이 사막을 횡단하게 만드는 것인가요. 가만, 그런데 생각해보니 ‘오아시스’라네요. 잠깐 목을 축이고 쉴 수는 있겠지만, 그 앞에는 여전히 황량한 사막이 펼쳐져 있는…. 건널 것인가, 머물 것인가. 사랑은 역시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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