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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시네마편지> 로드 투 퍼디션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두 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 배쯤 될 것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갔다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간다… 아버지는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 큰 이름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 '아버지는 누구인가' 중에서

'길'을 떠나는 이가 있습니다. 해답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또는 헤어지기 위해서도 우리는 길을 떠납니다. 그렇지요. 길 떠남이 의미를 가지려면 목적지가 뚜렷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유형이든 무형이든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영화 '로드 투 퍼디션'(Road to Perdition)은 그런 의미에서 목적이 분명한 길떠남을 보여줍니다. 살인을 자행하는 갱스터들의 앞에는 결국 죽음과 지옥밖에 있을 수 없다는 '파멸(Perdition)'이라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죽음에 이르는 길'. 그리고 또 하나. 복수를 잊기 위한 휴식과 평화의 공간으로 등장하는 이모가 사는 마을 '퍼디션'으로 가는 길. 악몽이 가득한 현실을 벗어나 평화로운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마이클 부자의 소망을 담은 길, 영화는 이 두 시선을 따라 전개됩니다.

마이클은 아버지를 보며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사실 공포에 질려있습니다. 아버지가 조직의 해결사임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아닙니다. 마이클은 밤마다 읽던 동화책을 통해 아버지의 직업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가 무서운 건 이제 단 하나 남은 가족인 아버지가 자신을 버릴까봐, 아니 미워할까 봐 두려운 것입니다.

이젠 나보다 똑똑해 얄미웠던 동생도, 사랑으로 감싸주시던 어머니도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습니다. 조직의 보스 존 의 아들인 코너가 모두 죽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코너의 살인 현장을 목격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굳은 표정을 보며 마이클은 생각합니다. “나 때문에 가족이 다 죽은 거야… 나만 아니었어도….”

두 아버지, 조직의 보스인 존 루니(폴 뉴먼)와 마이클 주니어의 아버지인 마이클 설리반(톰 행스). 너무나 닮은 이 두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생각이 짧고 잔인한 성품의 코너를 아들이란 이유로 허물을 덮어주는 존. 친아들 이상으로 믿어왔던 마이클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마이클 역시 자신의 혈육을 지키기 위해 코너와 존을 제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결국 파국으로 달려 갈 수밖에 없었던 두 아버지. 모두가 돌을 던진다해도 그들은 아버지이기에 그렇게 밖엔 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그림자에 아들이 보인다고 했던가요. 허나 아버지 마이클은 자신의 길을 아들이 따라오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뚝뚝했던 건 단지 네가 나를 너무 닮았기에 걱정이 되었던 것 뿐." 이제 아버지는 그의 '길'을 거의 다 온 듯합니다. 아버지의 길을 본 아들은 이제 자신이 가는 '길' 앞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누군가 내 아버지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물으면, 난 언제나 대답한다. 그 분은 내 아버지였노라고…." 

마이클은 "난 그 6주 동안 다 자랐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봄 하늘엔 나비와 꿀벌만 날고 있는 게 아닙니다. 구더기의 잠에서 깨어나 이제 시궁창 냄새를 쫓으며 세월을 보낼 파리도, 다른 생명의 피를 빨아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음을 따끔하게 가르치는 모기도, 컴컴한 고치 속에서
이를 갈며 부풀려온 빛에 대한 열망을 누르지 못해 불 속으로 몸을 던지는 나방도, 봄이 되면 모두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때가 되면, 마이클처럼, 동화책 너머의 세상에 눈을 떠야 합니다. 고통스럽지만 그게 '인생의 법칙'이자 '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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