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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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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북리뷰> 유혹의 기술


질투심을 유발해 제자들을 마음대로 움직인 프로이트, 노래를 통해 내면에 감추어진 악마적 본성을 마음껏 펼친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 자신만만한 눈빛과 표정으로 미국인에게 꿈과 비전을 제시하고 신화가 된 존 F. 케네디, 성적 매력이 풍부한 외모로 남성들의 욕망을 부추긴 세기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표적인 유혹자(seducer)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들이 역사 속에 펼친 유혹의 기술은 본능적으로 타고난 우연적인 것인가 아니면 치밀하게 계산되고 의도된 것인가. 나아가 유혹이라는 행위가 인간 사회에서 갈고 닦을 만한 ‘기술’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유혹은 고도의 심리전술이며, 마케팅 전략이고, 최고의 기예다

최근에 나온, 하드커버에 상당한 분량, 그리고 보라색 바탕의 표지색깔이 ‘유혹’적인 '유혹의 기술'(강미경 옮김, 이마고)은 이런 질문에 대해 유혹은 끊임없이 개발시켜야 하는 기예(art)와 같은 것이라고 답한다. 즉,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본능적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갈고 다듬어야 하는 기술이라고 주장한 것처럼 유혹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더 이상 여성이 남성을 꼬드기기 위해 펼치는 화장술이나 교태술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연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분투하는 연애관계는 물론이고, 현대의 대규모 광고와 PR, 소비자의 마음속에 자리잡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들이 총동원되는 마케팅 전략, 대중의 표를 끌어오기 위해 사생결단하는 선거전략에 이르기까지 유혹의 행위는 광범위하다. 유혹은 고도의 심리전술이며, 마케팅 전략이고, 권력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최고의 기예인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유혹(誘惑)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①(사람이 다른 사람을) 부정적인 일을 하도록 꾀거나 부추기는 것”이나 “②어떤 사물이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 그것에 빠지게 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말의 ‘유혹’으로 번역된 원서 제목의 ‘seduction’도 ‘옳은 길에서 벗어나도록 이끌다’라는 뜻을 가진 ‘deuk’라는 말을 어원으로 가지고 있다. 또 기술은 ‘art’를 번역한 말이다. 한 마디로 어떤 목적을 위해, 무엇인가로부터 이탈하도록 상대방을 이끄는 기예를 가르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유혹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우리의 일반적인 관념과 반대편에 서있다.

그것은 정치와 도덕을 분리하고 정치에서의 기예를 확보하려고 했던 마키아벨리적 권력론과도 일맥상통한다. 즉,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지 않으며 모든 인간관계는 심리전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이 책의 기본적인 가정은 마키아벨리가'군주론'에서 선보였던 권력론에서 힌트를 얻은 듯하다.

정치는 도덕과 무관하며 또 그러할 때만이 정치 본연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 마찬가지로 유혹도 선악의 개념에 갇혀 지탄받아야 하는 인간행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움직임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고도의 심리전술이자 기술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저자가 펼치고 있는 유혹의 기술들은 무엇인지 잠깐 살펴보자.

#유혹자에게 삶은 게임이고 유희의 장소일 뿐이다

이 책은 우선 역사 속에 펼쳐진 9가지 유형의 유혹자들을 분석한다. 냉담한 나르시시스트형의 코케트(coqutte)들, 열정적인 신념가형의 카리스마적 인물, 신비로운 우상형의 스타, 요부형의 세이렌, 바람둥이형의 레이크, 헌신적인 연인형의 아이디얼 러버, 창조적인 스타일리스트형의
댄디, 천진난만형의 내추럴 인간형이 그것.

그리고 이어서 유혹의 24가지 전략과 전술을 상세하게 들이민다. 책의 전반부인 ‘유혹자의 9가지 유형’(제1부)이 광범위한 역사적 분석과 인문학적 세계에서 펼쳐지는 내용이라면, 후반부에 해당하는 ‘유혹의 24가지 전략과 전술’(2부)은 그 어떤 자기계발 책보다 상세하고 정교한 유혹의 지침을 제공한다.

이 책을 손에 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유형의 유혹자에 속할지, 또 자신이 유혹하려는 대상(그런 게 있다면)은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10장을 참조하라) 책의 1부를 통해 알게 될 것이다. 2부를 통해서는 4단계에 걸친 24가지의 전략적 지침을 제공받을 수 있다. 관심과 욕망을 자극하고, 쾌락과 혼란을 창출하며, 유혹의 효과를 극대하고, 유혹의 결실을 거두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 가르치는 유혹의 기술들은 사랑하는 연인뿐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반드시 꼬드겨야 하는 모든 개인과 조직, 대중에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사랑하는 연인 때문에 애태우는 사람이나 마케팅 전략과 선거전략으로 스트레스 받는 사람, 나아가 정치를 예술적 경지로 이끌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한 줄기의 빛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아가 이 책은 유혹의 ‘도덕적 판단’에 대해서도 선을 긋고 출발한다.

“유혹자는 모든 도덕적 판단에서 자유로운 태도로 삶에 접근한다. 그에게 삶은 게임이고 유희의 장소일 뿐이다. 유혹자가 악하다고 비난하는 도덕주의자들도 속으로는 그가 가진 유혹의 힘을 시샘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유혹자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유혹자는 세상에 유혹적이지 않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도덕적인 원칙에 매여 행동하지 않는다”(14쪽)

#그 자체가 논쟁적이고 ‘유혹’적인 책
마키아벨리의 정치론이 그랬던 것처럼, 유혹이 선악의 문제를 넘어선다는 생각, 세상의 모든 것이 유혹이라는 이 책의 생각은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런 새로운 유혹론(?)을 철학적으로 검증하려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어찌 됐든 좋다.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구체적인 유혹의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하지만, 이 책이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과 마키아벨리의'군주론'이 사랑과 정치라는 (서로 다른 층위의) 인간행위 영역에서 하나의 교본이 되었던 것과 같은 지위를 유혹이라는 영역에서도 차지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유혹이 아무리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코드라고 할지라도, 또 역사를 움직여온 인간행위의 주요 요소였다고 해도, 유혹이라는 인간행위에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는 쉽게 탈색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그 자체가 여전히 논쟁적일 수 있는 인간 행위의 한 측면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매우 ‘유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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