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성들은 남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달해 보인다. ‘삼수갑산 사무(四無)’란 말도 그래서 생겼나 보다. 기생이 없고 식모가 없으며 문전걸식하는 모자(母子)가 없고 문맹녀(文盲女)가 없다는 사무(四無)를 통해서도 활성인 북녀(北女)의 위상은 드러난다.
한창 열기를 더하고 있는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도 북녀의 파워는 여실히 증명된다. 북한 응원단의 80%가 여자고, 동시 입장한 북측 기수도 무적이라는 여자축구 선수였다. 북녀들이 이렇게 활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의 심신을 도덕적으로 구속했던 사상이 남한보다 덜 보편화되고 덜 정착됐음을 이유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 그럴까. 한국여성개발원이 최근 펴낸 '북한의 여성교육에 관한 연구'를 통해 교과서에 나타난 북녀의 위상을 살펴봤다.
*분석대상 교과서
90년대 중반 이후 2000년까지 인민학교 8개 교과 26권의 교과서와 고등중학교 11개 교과 29권의 교과서를 합한 총 55권을 분석했다. 이중 김일성·김정일·김정숙 교과서가 인민학교 9권, 고등중학교 7권 등 총 16권이었다.
*남녀 분포
교과유형별로 등장인물의 성별 구성이 매우 달라진다. 일반교과 중심으로 보면, 여자가 절대적으로 적게 등장하는 가운데 인민학교보다 고등중학교에서 여자의 등장비율이 더 적게 나타난다. 인민학교에서는 여자의 등장비율이 35.2%인 반면, 고등중학교에서는 그보다 훨씬 적은 26.4%로 감소된다. 상대적으로 남자의 비율은 64.8%에서 73.6%로 증가하고 있다.
김일성 계열의 교과는 인민학교의 경우 여자의 구성비가 높아 22.3~24.4%를 차지하지만 고등중학교로 올라가면 7.8%와 2.7%로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김정숙 교과의 경우에는 남자의 비율이 인민학교와 고등중학교 모두 큰 차이 없이 30%대를 유지하고 있어 대조를 보인다.
북한 교과서의 남성중심성은 교과목 전체의 구조상에서 일단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전체 교과목 32과목 중 김일성, 김정일과 관련된 과목이 4과목을 차지하고 있으며, 각 교과 내에도 상당부분은 김일성, 김정일의 생애나 혁명활동 부분이 차지하고 있다. 반면 김정숙 교과는 2과목에 불과하고 배우는 학년 자체가 절대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영향력은 크지 않다. 또 국어나 공산주의 도덕과 같은 교과의 많은 부분이 과거 일제 시기나 6·25전쟁 등 독립투쟁이나 혁명활동을 포함하고 있어 남성중심의 경향은 배가된다.
교과서의 남성중심성은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조선역사교과의 경우 전체 등장인물 중 10.9%정도만 여성이 등장하는데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단 2명뿐이다. 특히 역사적 인물 중 여성의 등장은 더욱 제한적이어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 교과를 제외한 전체 일반교과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 중 여성은 16.2%이며, 이중 82.6%가 강반석, 김정숙으로 채워져 있다. 구체적인 역사적 여성인물은 혁명가 2명과 민비와 한석봉 어머니, 계월향 정도로 역사적 여성 인물의 수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남녀의 역할
성인 남녀의 역할을 보면, 우선 여성의 경우 가사활동이나 자녀양육부분이 큰 비중(인민학교 39.6%, 고등중학교 15.8%)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남자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일상생활 비중(인민학교 17.5%, 고등중학교 7.1%)은 적고, 정치 및 구국활동, 군사활동 등 활동의 비율이 인민학교에서는 16.3%, 고등중학교에서는 37%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가사영역에서의 뚜렷한 남녀역할 구분의 모습은 가사분담 문제가 관심영역에서 배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동활동에서는 성인에 비해 남녀간에 큰 역할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군사놀이나 훈련, 정치구국활동에 있어 남아가 약간 더 높고, 예절 및 질서에 대한 강조에서는 여아가 약간 더 높게 나타난다. 남녀 아동 활동의 차이는 단원내용에서보다는 삽화에서 두드러지는데, 운동과 스포츠활동의 모습이 남아 중심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월등히 많아 여자 아동의 2배 정도로 많이 등장하고 있다.
*등장인물의 직업
북한 교과서가 미래 지향적이기보다는 과거지향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등장 인물들이 종사하는 직업은 과거 신분을 나타내거나 전쟁에 종사하는 군인과 경찰 등 매우 제한된 범위에만 국한되어 있는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남성의 경우는 혁명투사나 군인, 경찰이 대부분이고, 여성의 경우는 교사가 많이 등장한다.
교사 외에 여성은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그려지는 경우도 많은데 인민학교에서는 교사와 동일한 비율인 22%, 고등중학교에서는 37.2%로 가장 많이 나타난다. 이는 남성의 12.6%보다 두 배정도 많은 것으로 남성보다 여성의 직업이 상대적으로 다양하게 묘사되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노동자 중에서도 제조업이나 직물생산에 종사하는 것으로 주로 그려지는 것도 특징이다.
*남녀평등 정도
여성의 경우 직업활동에 종사하는 비율이 인민학교에서는 12%, 고등중학교에서는 25.7%로 증가, 여성의 사회참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남녀평등을 구체적으로 생활화하려는 노력을 교과서에서 찾아보기는 힘들다. 유일하게 공산주의 도덕교과서에서 남녀관계에 대한 단원이 있으나 신체적 특징을 감안한 상호 예절에 치중되어 있어 남녀평등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교육에는 무관심하다.
북한 여성에 대한 교과서의 태도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김정숙어머님혁명력사'다. 이 교과서는 1917년 출생부터 1949년 32세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김정숙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전편에 흐르는 주된 여성상은 혁명적 여성이지만 심층 분석해 보면, 혁명에 참가하는 전투적 여성을 넘어 여성이 갖추어야 할 덕성이나 자질도 소유한 이상적 인간으로 묘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민무숙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은 "이상적인 딸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그리고 사회적 지도자로서의 다양한 모습의 김정숙은 북한이 추구하는 이상적 여성상"이라며 "이 교과서는 학생들이 사회참여도 적극적으로 하면서 가정을 이끄는 여성 본연의 역할도 충실히 하는 이중적 부담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자연스럽게 교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