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부터 30시간을 예정으로 교원정보화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매번 방학때마다 실시하는 연수이지만 교원들의 열기는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가고 있다. 30명이 정원인데, 지난해 11월 초에 이미 신청이 마감되었다. 교사들의 뜨거운 연수열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미 알려진바와 같이 금년부터 서울시교육청소속 초·중·고등학교 교원들은 매년 15시간 이상의 연수를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어쩌면 시교육청의 이런 방침이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번 겨울방학 연수에서만 신청자가 폭주한 것은 아니다. 지난 여름방학때도 그랬고, 지난해 겨울방학때도 마찬가지였다.
연수를 받는다는 것은 교원들이 교육자에서 피교육자로 바뀌는 상황이다. 매일같이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어느날 갑자기 배우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다른 집단보다 연수를 진행하기 어려운 점이다. 방학이지만 연수를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교원들이 전문성신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가만 놔두면 더 열심히 하는 것이 교직사회의 특징이다. 자꾸 간섭하면 도리어 역효과를 내는 것도 교직사회의 특징이다. 교원평가제도입을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만 두면 뭐든지 열심히 잘 할 수 있는데, 자꾸 간섭한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강의를 열심히 하고 있던 오전 11시경, 밖에서 연수를 받지 않지만 밀린일이 있어 출근한 우리학교 선생님 한분이 잠깐만 나와보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연수중에 강사를 불러내는 일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어지간히 급한일이 아니고서는 불러내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무슨일인가 싶어 잠깐 강의를 멈추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밖에서 벌어진 광경을 보고 잠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싱싱하고 먹음직스런 귤 한 박스와 그 선생님 손에 들려있는 떠먹는 요구르트 봉투 때문이었다.
'이거 교장선생님께서 컴퓨터실에 가져다 드리래요. 연수받으시는 선생님들, 지금쯤이면 시장기가 있으실 거래요. 잠시 쉬면서 이것좀 드시도록 하라고 하셨어요.' 어찌된 영문인지 자세히 묻지도 않고 연수받는 교원들에게 전·후 사정을 이야기 했다. 그러자 컴퓨터실은 갑작스런 횡재에 너무나 좋아하는 교원들의 모습에서 잠시 학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박수를 치고 모두 밖으로 나와서 귤과 떠먹는 요구르트를 순식간에 비워 버렸다..
잠시 교장실에 내려가 교장선생님께 전·후 사정을 여쭈었다. '연수를 받으러 오신 선생님들은 우리학교를 찾아주신 손님들입니다. 학교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교장이, 손님접대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라고 말씀하시면서 웃으신다. '한 가지도 아니고 두 가지씩 쏘시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선생님들이 너무 좋아하시던걸요.' '좋아하시고 맛있게 드셨다면 저는 그것보다 더 기쁜일은 없습니다.'
연수를 마치고 알았지만 오늘의 교장선생님 선물은 순수한 '사비'로 마련하셨다고 한다. 연수예산이 넉넉치 못해 선생님들에게 대접할 수 있는 것은 커피와 녹차 뿐이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고 연수생들을 위해 손님접대를 했다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에서 뭔가 올해는 더욱더 편안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이 될 것 같은 예감이 자꾸 든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새학기가 시작되면 이유를 알 수 있을까. 훈훈하고 기분이 최고인 하루였다.